“특허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외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을 겁니다.”
대전 특허청 본청에서 지난 8일 만난 문창욱 특허청 신임 반도체 전문심사관은 “30년 넘게 체득한 기술을 국내에서 활용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문 심사관은 1990년 삼성종합기술원에 입사해 올해 3월까지 삼성에서 반도체 설계를 맡아 일하다 정년퇴직 5일 만에 특허청 전문심사관으로 부임했다. 32년간 삼성에서 반도체 장비를 설계하다 6대1의 경쟁을 뚫고 특허청에 입사한 이수찬 전문심사관도 “외국계 회사에서 퇴직 후 일본에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며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특허청은 지난 4월 ‘반도체심사추진단’을 새로 출범시키면서 반도체 전문심사관을 30명 채용했다. 국내 업체들이 반도체 특허 확보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관련 직종에 몸담았던 ‘반도체 베테랑’들을 심사관으로 영입한 것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전문 인력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면서 기업의 핵심 기술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서 기업 인사 담당자가 찾아올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두 심사관이 해외 일자리를 알아본 가장 큰 이유는 국내서는 퇴직 후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심사관은 “은퇴 후 국내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대부분 영업에 대한 부담을 안게 된다”면서 “나의 노하우가 다시 사용되길 원한다면 외국이라도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허청 전문심사관은 본인이 원한다면 입사 후 10년을 일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삼성에서 갈고 닦은 기술로 한국 반도체 특허 확보의 밑거름이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반도체 전문 인력이 해외로 나가면 기술 유출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기업마다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하고 이직 영역을 제한한다지만 기술 노하우나 인적 네트워크 등의 유출은 막을 수 없다. 이 심사관은 “인력이 해외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기술 유출과 암암리에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문 심사관은 “미 정부의 반도체법 영향으로 미국 내 반도체 제조가 본격화되면 ‘이직 러시’가 일어날 것”이라고도 했다.
반도체 전문심사관들은 본인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관련 분야 특허를 주로 심사하고 있다. 지금은 선임 심사관과 함께 일하고 있지만 2년 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단독 심사를 하게 된다. “30년 넘게 반도체 설계를 해서 도면만 봐도 어떤 기술인지 이해가 된다”며 자신감을 내비친 이 심사관은 “앞으로 이 분야 전문 심사관으로 한 단계 도약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