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찬용 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이 진공 상태에서 자성(磁性) 박막의 특성을 확인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는 차세대 초전력 소자에 쓰일 핵심 기반 기술을 개발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올해 국제 단위 체계는 새로운 접두어들이 추가돼 아주 크거나 작은 단위를 보다 간편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태양의 질량은 대략 2x10의 30제곱㎏인데, 이전에는 가장 큰 단위가 요타(yota·10의 24제곱)여서 2,000,000,000요타g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런데 2개월여 전 국제도량형 총회에서 퀘타(10의 30제곱)·론나(10의 27제곱)·론토(10의 -27제곱)·켁토(10의 -30제곱) 등 4개 접두어를 추가하기로 의결해 태양 질량을 2000퀘타g으로 간략하게 쓸 수 있게 됐다. 국제단위계(SI) 접두어가 추가된 것은 31년 만이다. 개인이 휴대용 하드디스크로 TB(테라바이트)급을 쓸 정도로 데이터양이 급증하고, 한편으로는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 과학이 발달한 것이 높은 단위와 낮은 단위의 접두어를 각각 추가한 배경으로 꼽힌다.

◇20억년간 오차 1초 ‘광시계’ 개발

측정과 기본 단위, 표준은 과학기술, 산업과 뗄 수 없는 기초 토대로 꼽힌다. 국가표준기본법이 국가측정표준 대표기관으로 규정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은 국제 도량형 총회에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으로 참석해 접두어 추가와 윤초 폐지 등 굵직한 결정에 동참했다.

표준연 시간표준그룹이 개발한 광시계로 실험하는 장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지난 1일 찾아간 표준연 정문에는 길이·질량·온도·시간·전류·광도·물질량 등 측정의 가장 기본이 되는 7개의 국제단위를 각각 형상화한 기둥들이 세워져 있었다. 금속 기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화하는 특성을 가져 시간의 기본단위인 초(s)를 상징하고, 벽돌 기둥은 점토를 고온에서 구워냈다는 의미로 온도의 단위 캘빈(K)을 나타내는 식이다. 표준연은 “측정과 단위, 표준은 공기처럼 평소엔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표준연은 세계 표준 시간인 세계협정시(UTC) 생성 기관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해 참여하고 있다. 세계 시간의 기준으로 달 탐사 등 우주 임무에서 필수로 사용하는 UTC는 세슘 원자가 1초에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 것을 기준 삼아 1초를 정의한다. 이처럼 UTC에 쓰이는 세슘 원자시계보다 100배 이상 정확한 광(光)시계를 표준연이 개발해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다. 표준연의 광시계 ‘KRISS-Yb1′은 20억년 동안 오차가 1초에 불과할 정도로 정확도를 인정받았고, UTC 운영을 위한 주파수 표준기로 국제도량형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돼 있다. 표준연은 약 138억년인 우주의 나이 동안 오차가 1초 이내인 세계 최고 수준의 광시계를 2025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 추가된 단위 접두어

◇차세대 초전력 반도체 기술도 구현

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는 양자 센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한 양자 기술과 새로운 측정 표준 등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1일 표준연 신소재동의 양자스핀팀 연구실에서는 이날 공개된 스커미온 트랜지스터 관련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가 개발한 기술로, 기존 소자보다 전력 소모를 대폭 줄인 차세대 초전력 소자 개발에 쓰일 핵심 기반으로 꼽힌다. 황찬용 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장은 “국내 대기업도 기존 실리콘 반도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차세대 반도체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이번에 개발한 기술이 차세대 반도체 소자와 양자 기술에 응용될 수 있도록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표준연은 인간 두뇌의 신경망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에 이번 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표준연은 그동안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국가 측정 표준 능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며 “앞으로도 양자 컴퓨터를 비롯해 국가 전략 기술과 신산업 기반을 창출하는 초일류 측정 표준 연구 기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