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생리학과 생체역학 등이 접목된 신경역학이 발달하면서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가 나온다. 사진은 생체공학 인간(바이오닉 맨)이 주인공인 미국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의 한 장면. /IMDb

1970년대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를 우리나라에선 1980년대 후반에도 공중파 TV에서 방영해 많은 이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 대령은 비행 중 사고로 한쪽 눈과 팔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지만, 600만달러를 투입한 생체 재건 프로젝트를 통해 최초의 생체공학 인간(Bionic man)이 됐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적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이 국가의 비밀 프로젝트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이 드라마를 당시 시청자들은 SF(공상과학소설)로 기억하고 있다. 드라마 첫 방영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600만불의 사나이’는 여전히 SF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을까?

오스틴 대령이 활약하던 당시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신경 역학(Neuromechanics)’이라는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경역학(神經力學)은 신경생리학, 생체역학의 개념이 결합된, 의학과 공학이 어우러진 다학제적 학문이다. 우리 몸의 간단한 동작 수행에도 신경역학의 개념이 녹아있다. 물을 마시고, 길을 걷는 등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 몸은 다양한 물체와 상호작용을 하고, 감각 신호를 받아 이에 맞게 신체를 조절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뇌의 신호는 어떠한지, 관절에 걸리는 힘은 얼마나 되는지, 근육이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신경역학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에 고령자 비율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65세 이상 인구의 38.1%가 통증과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무릎 관절염을 앓고 있으며, 약 15%는 보행 능력과 신체 기능 저하로 생존율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근감소증 환자라는 통계도 있다. 고령층에게 근골격계의 원활한 기능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건강한 노년을 의미하므로 신체의 취약 부위를 평가하고 훈련할 수 있는 예방·재활 기기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노인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우리나라 연구진이 병원 밖에서도 근력 강화·신경근 제어 등 재활 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 기기를 개발해 미국 FDA 2등급 의료 기기 인가를 받으며 효과와 안정성을 확인받기도 했다.

신경역학의 적용을 스포츠 분야로도 확대할 수 있다. 현대인의 삶에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운동선수가 아닌 일반인들도 근골격계 부상 등에 노출되고 있다. 부상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을 파악하고 취약 부위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연구에 신경역학의 개념을 접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운동할 때 몸에 센서를 부착해 신체 부위별 근육의 움직임 등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부상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최상의 신체 능력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 맞춤형 운동 설루션을 제공한다. 이미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연구들이 엘리트 체육 선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생활체육을 즐기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일반인 대상으로도 연구를 확대하는 작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송주 KIST 바이오닉스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이 밖에도 신경역학의 연구 분야는 로봇, 무선통신이 가능한 생체 신호 수집 센서,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기법 기술과도 접목이 가능하다. 생각만으로 기기를 조종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공상과학 속에서만 나오는 일이 아니다. 불의의 사고, 선천적 장애로 사지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만으로 보행 보조 로봇을 제어할 수 있다. 환자의 뇌에서 움직임의 의도가 있을 때 발생하는 뇌파를 비침습적인 뇌파 측정 센서를 활용해 감지하고 분석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BCI) 기술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환자는 양쪽 목발을 짚고 스스로의 생각만으로 앉고, 서고, 걷는 일을 할 수 있다. 우리의 뇌, 신경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로봇 그 자체가 의수나 의족이 되는 것도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신경역학은 그 가능성을 더 많은 분야로 확장시켜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연구 분야가 될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에는 SF 드라마의 소재에 불과했던 생체공학 인간은 신경역학의 발달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개발된 다양한 기술들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