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가 검은 선으로 밑그림만 그려도 인공지능(AI)이 정교하게 채색 작업을 대신해주는 기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대학과 언론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웹툰의 성장을 주목한 후다. 이 기술은 웹툰 작가가 일일이 색칠하는 수고를 덜어 생산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형 포털과 대학 연구진이 협업해 개발한 이 기술은 웹툰 작가의 예전 작품 이미지를 대량으로 학습·분석한 AI가 작가 고유의 스타일대로 캐릭터와 배경 채색을 자동으로 완성한다. 기술 개발에 사용된 초고성능 컴퓨터가 국가 수퍼컴퓨터 5호기로 꼽히는 ‘누리온’이다. 이처럼 방대한 이미지 데이터를 분석은 물론이고 단백질 변이에 따른 코로나 감염률 분석, 우주 탄생 이후 은하단 형성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대형 연구에도 누리온을 사용했다. 생활 속에서 비교적 쉽게 접하는 웹툰 제작부터 우주 은하의 형성 과정 규명까지 수퍼컴퓨터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누리온 이을 수퍼컴퓨터 6호기 추진
누리온을 구축·운영 중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국가초고성능컴퓨터 활용·육성법에 따라 국가 초고성능 컴퓨팅센터로 지정된 기관이다. 지난달 찾아간 KISTI 국가슈퍼컴퓨팅센터 로비에는 1998년에 도입한 수퍼컴퓨터 1호기 모형부터 현재의 5호기까지 전시돼 있었다. 국가 수퍼컴퓨터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자리다. 이 건물 2층에 설치된 누리온은 마치 수많은 냉장고를 병렬로 붙여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누리온 무게는 133t, 연결된 케이블 길이는 132㎞에 이른다.
누리온 성능은 1초에 2경5700조번 연산이 가능한 25.7페타플롭스(PF)로 70억명이 420년 동안 계산해야하는 연산을 1시간 만에 처리하는 수준이다. 누리온은 첨단 가상 원자로·우주 발사체 설계 등 거대 난제 연구뿐 아니라 기초·원천 기술 개발, 국가·사회 현안 해결, 제조업 기술 혁신 등에 두루 쓰이고 있다. 삼성전자·기상청·SK텔레콤 등이 보유한 수퍼컴퓨터는 일반 연구자가 이용하기 어려운데 국가 수퍼컴퓨터는 대학교 학부·석박사 학생들도 일정 비용을 내고 사용할 수 있다. 수퍼컴퓨터를 처음 쓰는 이들을 위한 무료 사용 서비스도 있다. 다만 올 상반기에 집계한 최근 1년간 평균 사용률이 77%에 달해 과부하 상태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도입 당시에는 세계 수퍼컴퓨터 순위 11위였던 누리온의 성능은 올해에는 46위로 하락했다. 해가 지날수록 고성능 수퍼컴퓨터가 세계적으로 늘어난 데 따른 결과다.
이에 따라 누리온의 뒤를 이을 수퍼컴퓨터 6호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수퍼컴퓨터를 자체 개발하지 않고 외국 제품을 들여오고 있다. 수퍼컴퓨터 6호기는 누리온보다 30배 가까이 연산 속도가 빠른 600페타플롭스급으로 세계 10위 이내 성능이 될 전망이다. 총사업비 약 2929억원 규모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내년부터 예산이 투입된다. KISTI는 수퍼컴퓨터 6호기의 정식 서비스가 2024년에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성과 공유하는 ‘오픈 사이언스’ 확산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KISTI는 공적으로 지원된 연구의 논문, 데이터 등 주요 성과를 제약 없이 사용하도록 하는 ‘오픈 사이언스’ 생태계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연구 결과를 확인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 공유,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KISTI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가 운영하는 ‘국가 오픈액세스 플랫폼(AccessON)’을 통해 무료로 원문을 볼 수 있는 논문이 현재 3673만편에 달한다. KISTI 과학기술디지털융합본부는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을 융합해 도시 침수 예측, 대중교통 최적화, 감염병 전염 경로 분석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사회 현안 해결을 지원하고 있다. 김재수 KISTI 원장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데이터는 핵심 생산 요소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며 “과학기술 데이터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혁신을 선도해 새로운 국가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