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대전 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의 한 실험실 책상 위 작은 병에 노란색의 겔(gel)이 담겨 있었다. 생명연의 권오석 박사가 개발한 마약 탐지 물질이다. 권 박사는 바로 옆 빨간 액체가 담긴 병을 들어 보이면서 “노란색 겔은 마약과 닿으면 단 10초 만에 빨간색으로 색깔이 바뀐다”라고 말했다. 생명연은 다양한 탐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탐지 영역은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마약뿐 아니라 암이나 우울증 같은 질병, 식품까지 실생활의 다양한 범위로 확대되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던 기존의 방법의 한계를 넘어 빠르면서도 간단하게 탐지하는 것이 연구 목표다.

◇마약 닿으면 10초 이내 색 변화

권 박사 연구진은 성범죄에 흔히 사용되는 마약 GHB(감마 하이드록시낙산)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GHB는 중추신경 억제제로, 물이나 술에 타 먹어 ‘물뽕’이라 불린다. 복용 6시간 후면 몸에서 빠져나가 검출이 어렵다. 특히 무색, 무취, 무미 특성을 가져 성범죄에 많이 쓰인다.

연구진은 헤미시아닌이란 염료를 기반으로 GHB와 반응하면 색이 바뀌는 화합물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묵 같은 형태의 하이드로겔 형태로 제작했다. 평소 노란색을 띠는 겔은 GHB에 노출되면 약 10초 이내에 빨간색으로 변한다. 화합물은 실제 GHB가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1㎍/㎖ 농도에까지 반응한다. 권 박사는 “다른 마약에 적용해 약물에 따라 각각 다른 색깔로 변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된 겔은 몸에 발라 간단하게 마약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매니큐어나 화장품 형태로 손에 바른 뒤, 술을 손에 떨어트려 색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클럽 같은 어두운 공간에서 육안으로 색깔 확인이 어려운 경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그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다. 현재 이 마약 탐지 기술은 기업에 기술 이전돼 제품화가 추진되고 있다.

◇우울증·암 진단에도 활용 가능

이 밖에 생명연은 다양한 센서도 개발하고 있다. 연구진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바이오센서를 만들었다. 세로토닌은 우울증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사람의 감정과 식욕, 수면 등의 조절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세로토닌에 반응하는 바이오 탐침을 제작하고 이를 전도성 높은 나노섬유와 결합했다. 센서가 세로토닌과 반응하며 발생한 전기적 신호를 통해 체내 세로토닌의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장치는 소형으로 제작돼 일반인도 손쉽게 측정할 수 있다. 권 박사는 “코로나 시기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환자들이 스스로 측정해 제때 치료를 받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질병으로도 확장 가능하다. 권 박사는 “센서 끝에 어떤 것을 탑재하느냐에 따라 여러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사람의 호흡이나 소변을 통해서 암을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식품에도 적용될 수 있다. 연구진은 육류가 부패하면 발생하는 화합물을 측정할 수 있는 일명 ‘전자 코’를 개발했다. 현재 육류 부패 측정 방식은 오랜 시간이 걸려 현장에서 바로 활용하기 어렵다. 전자 코를 활용하면 육류의 신선도를 현장에서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이 개발한 센서는 육류가 부패할 때 나오는 카다베린·푸트레신과 더불어 암모니아를 측정할 수 있다. 또 악취 유발 물질 중 하나인 황화수소도 보조적으로 측정한다. 측정 결과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나무의 구제역이라고 불리는 과수화상병에도 센서를 활용할 수 있다. 권오석 박사는 “과수화상병은 구별이 어려워 이미 확인했을 때는 늦은 경우가 많다”며 “진단 기술이 사람뿐 아니라 식물의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