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 분야의 정부 출연(出捐) 연구원인 한국한의학연구원의 A연구원은 2017년 4개월간 계약직으로 연구 과제에 참여했다. 2018년 다른 연구에 참여한 그는 그해 연말에 정규직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역점 정책으로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것이었다. A씨처럼 지난 정부 5년간(2017~2021년) 한의학연구원에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은 115명에 이른다. 이 기간 총예산 대비 인건비 비율은 21%에서 33%로 12%포인트 급증했다. 반면 특허 등록 건수는 79건에서 53건으로 33% 줄었고, 기술이전 계약 건수는 35건에서 14건으로 60% 감소했다. 인건비 비율은 큰 폭으로 늘었는데 연구 성과는 하락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3P 다 오른 곳 3곳뿐

특허(patent), 논문(paper), 기술이전(product)은 과학기술 출연연의 대표적인 성과 지표로 ‘3P’로 불린다.

25일 국회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NST 소관 출연연 24곳(녹색기술센터는 특허·기술이전 실적 없어 제외) 가운데 14곳이 3P 성과 지표가 2개 이상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NST 소관 출연연 58%에서 2개 이상 지표가 하락한 것이다. 3개 지표가 모두 떨어진 출연연도 식품연구원 등 5곳이나 됐다. 반면 3P 지표가 모두 오른 곳은 생산기술연구원·건설기술연구원·안전성평가연구소 등 3곳에 그쳤다.

과학기술계는 출연연 성과 지표가 하락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주52시간제 시행, 블라인드 채용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정부가 과학기술계 반대에도 이런 정책을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연구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특히 2년 이하 계약으로 연구 등을 수행하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해 출연연 연구력 향상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NST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과기 출연연에서 비정규직-정규직 전환 인원은 3187명으로 집계됐다. 문재인 정부 첫해 9명이던 전환 인원이 2018년에는 2196명으로 급증했다. 보조 업무나 단기 연구 과제를 하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한 여파로 우수 인력을 새로 뽑거나 충원할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출연연 관계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 일부 직원은 역량이 떨어져 연구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조직 전체 사기를 떨어뜨린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으로 지원자가 어디서 무엇을 배웠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져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를 가려내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대로 가면 반등 어려울 것”

성과 지표가 하락한 일부 출연연은 질적으로는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한의학연구원은 “기술이전 계약 건수 감소는 무상 기술이전과 1000만원 이하 소액 기술이전 건수가 줄었기 때문”이라며 “총 계약 액수는 늘어나 질적으로는 성장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하지만 출연연 성과 지표 하락이 앞으로 더 악화할 수 있다고 과학계는 우려한다. 과기 분야 특성상 연구 경쟁력 약화는 연구 인력 수준 등 여러 요인이 수년간 서서히 쌓여가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은 “주 52시간과 블라인드 채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출연연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대로 두면 출연연은 민간과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준 의원은 “과학기술 경쟁력 추락을 막기 위해서는 지난 정부가 밀어붙인 정책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