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000m에 위치한 예미랩./IBS

지난달 29일 강원도 정선의 기초과학연구원(IBS) 예미랩. 이곳은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암흑 물질과 중성미자 등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고자 만든 곳으로 지하 1000m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이날 예미랩 지상 입구에서 승강기를 타고 일반 승강기보다 4배나 빠른 초속 4m로 수직 600m 아래까지 내려갔다. 높이가 555m인 롯데타워보다 더 깊은 이곳에서는 휴대전화 신호도 터지지 않았다. 승강기에서 내려 비스듬한 경사가 진 782m의 터널을 카트를 타고 약 4분간 더 들어가니 한창 구축 중인 실험실이 나타났다. 긴 터널 양옆으로 개미굴처럼 판 공간에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장비를 들여와 암흑 물질과 중성미자를 연구할 계획이다. IBS뿐 아니라 여러 연구 기관에서 지하 1000m 아래에서 다양한 과학 실험을 할 예정이다. IBS 박강순 박사는 “실험실이 깊은 지하에 있는 것은 우리가 찾고자 하는 입자를 검출하는 데 방해되는 우주선(宇宙線)을 막기 위해서”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기초과학의 비밀을 푸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우주 25% 구성하는 암흑 물질 발견 목표

예미랩에서 IBS가 연구하는 것은 크게 암흑 물질과 중성미자 두 가지다. 암흑 물질은 전체 우주 질량의 25%를 차지하지만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은하의 속도를 관측하던 중 실제 은하의 질량이 더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우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암흑 물질이다. IBS의 코사인(COSINE)팀은 암흑 물질 후보 중 하나인 윔프(WIMP)를 찾고 있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란 뜻이다. 우주가 탄생했을 때 생성된 뒤, 그 상태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관측되지 않은 암흑 물질을 찾아 그 성질을 밝히면 우주의 탄생과 소멸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다고 과학계는 기대한다.

우주 기원 밝힐 지하 1000m 실험시설 ‘예미랩’ /그래픽=김하경

입자가 검출기를 통과할 때 검출기와 반응해 전자를 방출하는데, 이 에너지를 분석해 윔프의 존재를 찾아낸다. 우주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고에너지 입자들이 검출기와 반응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암흑 물질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콘서트장에서 파리 소리를 잡아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깊은 지하에서 실험하는 것이다. IBS는 “지표면 대비 100만분의 1로 우주선을 차단한다”고 했다. 이런 환경인 예미랩에서는 검출기에 들어가는 NaI(아이오딘화나트륨) 결정을 200kg급으로 실험한다.

지하 1000m 아래 예미랩./IBS

◇10가지 넘는 독립적 실험 진행 가능

IBS의 아모레(AmoRE)팀은 중성미자를 연구한다. 중성미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 12개 중 하나다. 현재까지 전자·타우·뮤온 중성미자 세 가지가 발견됐다. 중성미자의 정확한 질량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미 알려진 3종 외에 다른 중성미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성미자의 성질을 규명하면 빅뱅 직후 우주에서 물질과 반(反)물질이 함께 만들어졌지만, 어떻게 물질만 남아 현재의 우주를 구성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지하실 실험을 통해 중성미자의 질량과 성질을 규명할 계획이다.

예미랩은 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여섯째로 큰 실험 시설로, 면적은 3000㎡(약 900평)에 이른다. 이곳에서 10가지가 넘는 독립적인 실험이 진행될 수 있다. 지난달 주요 실험 공간 공사가 완료됐고 5일 준공식이 열렸다. 이달부터 실험 장비 이전과 구축 작업이 이뤄지며 내년부터는 본격 실험에 착수할 예정이다. 기상청은 지진 관측 장비의 성능을 확인하고, 지질자원연구원·원자력연구원·경북대 등에서 실험 시설을 활용할 계획이다. 미국과 캐나다, 일본 지하 실험 시설에서는 이미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했다. 김영덕 지하실험연구단 단장은 “우리도 이제 우수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며 “암흑 물질과 중성미자 연구를 통해 우주의 기원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 1000m 아래 예미랩./I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