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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먼 미래 알약 하나로 하루 식사를 대신하는 모습이 나온다. 심지어 운동도 알약으로 대체한다. 아침에 일어나 알약 하나 먹으면 한 시간 조깅을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영화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운동 후 몸에서 증가하는 물질을 이용해 비만을 막고 당뇨를 치료하며, 심지어 기억력까지 높이는 식이다. 몸과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만드는 운동을 약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운동 후 증가한 혈액 성분으로 식욕 억제

미국 베일러 의대의 용 수 교수와 스탠퍼드 의대의 조너선 롱 교수 연구진은 지난 1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운동을 한 쥐에게서 생성되는 물질이 식욕을 억제해 비만을 방지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했다”고 밝혔다. 운동 알약을 만들 원료를 찾아낸 것이다.

연구진은 쳇바퀴를 열심히 돌린 생쥐에게서 혈액을 채취했다. 액체 성분인 혈장을 분석해보니 젖산과 페닐알라닌 결합물질이 늘어나 있었다. 젖산은 운동 후 근육에 생기는 피로물질이고 페닐알라닌은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 중 하나다. 고지방 사료를 먹고 비만이 된 생쥐에게 젖산-페닐알라닌을 고함량으로 줬더니 12시간 만에 다른 생쥐보다 사료 섭취량이 절반까지 줄었다. 10일 동안 먹이자 지방이 사라져 체중이 줄었다.

연구진은 CNDP2라는 효소 단백질이 젖산-페닐알라닌 결합 물질을 합성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유전자가 없는 쥐는 쳇바퀴를 아무리 돌려도 젖산-페닐알라닌이 나오지 않아 계속 사료를 먹고 살이 쪘다. 연구진은 운동으로 인한 비만 방지 효과의 4분의 1은 CNDP2 효소 작용 덕분이라고 밝혔다.

생쥐의 운동 알약 성분은 경주마와 사람에게서도 확인됐다. 워싱턴 의대의 롱 교수는 “운동 효과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했다”며 “이번 결과는 나이가 들거나 몸이 약해 충분한 운동을 못 하는 사람들이 운동 알약으로 골다공증과 심장병 등을 예방하는 길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운동 알약의 효과를 볼 사람은 많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주일에 최소한 2시간 반은 운동을 하라고 권고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4분의 1을 넘는다고 밝혔다. 브라질 연구진은 2012년 국제 학술지 ‘랜싯’에 전 세계 100여 국을 조사한 결과 인구의 30% 이상이 운동량이 부족한 상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근 발달시켜 당분 대신 지방 연소

운동 효과를 유도하는 약물은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약물이 이른바 516 화합물이다. 미국 소크연구소의 로널드 에번스 박사는 2002년 GW1516이라는 약물을 생쥐에게 먹였더니 다른 쥐보다 쳇바퀴를 두 배나 더 오래 돌리는 것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소파만 찾는 게으름뱅이가 약을 먹고 마라톤 선수가 된 셈이다.

연구진은 운동을 할 때 근육이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태우도록 유도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GW1516은 이 유전자를 작동시킨다. 그러면 근육에서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속근 대신 지구력을 높이는 지근이 더 많이 생긴다. 지근은 당분 대신 지방을 태운다.

연구진은 516 화합물을 듀센 근이영양증 치료제로 임상시험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운동을 못 하는 것을 약이 필요한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아 근육 이상 질환 치료제로 먼저 개발하는 것이다. 듀센 근이영양증에 걸리면 근육세포를 구성하는 핵심 단백질이 합성되지 않는다. 전 세계 환자 수는 30만 명 정도인데 대부분 20대에 심장 근육 기능이 멈춰 사망한다. 연구진은 앞으로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 파킨슨병, 헌팅턴병 환자도 이 약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다나-파버 암연구소의 브루스 스피겔만 박사 연구진은 2012년 운동 중 근육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이리신을 찾아냈다. 비만 생쥐에게서 이리신이 더 많이 나오도록 하자 백색지방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갈색지방으로 바뀌었다. 이러면 고지방 사료를 먹어도 체중이 줄었다.

영국 사우샘프턴대의 알리 타바스솔리 교수 연구진은 세포가 에너지가 떨어졌다고 착각하도록 유도하는 14 화합물을 개발했다. 고지방 사료를 먹인 쥐에게 투여하자 에너지 생산량이 늘어 체중이 줄고 당뇨 증상이 사라졌다. 독일 막스플랑크 노화연구소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공동 연구진은 지난 2020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노화’에 운동 후 근육에 축적되는 세스트린이라는 단백질이 쥐와 초파리에게서 운동능력을 높이고 대사효율을 증가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운동은 노화로 인한 뇌 기능 저하도 막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운동을 하기 힘들어져 인지 기능이 더 떨어진다. 이 역시 운동 알약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토니 위스-코리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네이처에 운동을 많이 한 쥐의 혈장을 다른 쥐에게 수혈하자 뇌에 28일 동안 운동을 계속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특히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에서 신경세포가 더 많이 생겼다. 기억력 시험에서도 운동한 쥐의 혈장을 수혈받은 쥐가 게으름뱅이 쥐의 혈장을 수혈받은 쥐보다 뛰어났다. 혈장에서 운동 효과를 유도한 물질을 찾아내면 기억력을 높이는 운동 알약이 될 수 있다.

부작용 있어 단기 치료에 적합

운동 알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이클 선수와 권투 선수들이 소크 연구소가 개발한 516 화합물을 지구력 향상을 위해 불법 사용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물질은 이미 도핑 검사 목록에 들어갔다. 고함량 516을 계속 투여하면 생쥐에게서 암이 발생했다는 보고도 있다. 사우샘프턴대의 14 화합물도 생쥐의 인지 능력을 떨어뜨렸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운동 알약의 부작용을 줄이려면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써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를 테면 수술 회복 환자나 비만 환자 또는 우주인처럼 운동이 필요하지만 충분하게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단기간 처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약도 남용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