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에 몸을 문지르는 남방큰돌고래. 산호 분비물에는 돌고래 피부를 보호하는 성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스위스 취리히대

사람이 코로나를 예방하려고 손 소독제를 바르듯 돌고래도 피부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치료제를 몸에 바른다. 약국은 산호초에 있다. 돌고래가 산호에 몸을 문지르며 지나가기만 하면 치료 성분이 자동 분사되는 드라이브스루 시스템이다.

스위스 취리히대의 앙겔라 질트너 박사와 독일 기센대의 게르트루드 몰로크 교수 연구진은 지난 19일 국제 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홍해에 사는 남방큰돌고래가 일부러 찾아 몸을 문지르는 산호에서 항생물질 등 치료 성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질트너 박사는 2009년 홍해에서 잠수하다 돌고래가 특정 산호에 몸을 문지르는 모습을 관찰했다. 돌고래들은 산호 앞에 말 그대로 줄을 섰다. 한번 산호에 몸을 문지르고 나서 뒤로 돌아나와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연구진은 돌고래 무리와 자주 같이 잠수하면서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덕분에 돌고래가 산호 2종과 해면 1종에만 집중적으로 몸을 문지르는 것을 알아냈다. 돌고래가 몸을 대고 흔들면 산호를 이루는 개체인 폴립들이 점액을 분비했다. 돌고래 몸은 점액에 덮여 노랑이나 녹색으로 변했다.

홍해 바닷속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특정 산호에 몸을 문지르려고 몰려든 모습. 돌고래가 산호를 건드리면 치료물질을 분비한다./스위스 취리히대

분석 화학자인 몰로크 교수는 산호와 해면이 분비한 물질에서 항생제와 항산화제, 호르몬 등 대사물질을 17종 찾아냈다. 몰로크 교수는 “반복적으로 산호에 몸을 문지르면 대사물질이 돌고래 피부에 묻는다”며 “대사물질은 돌고래의 피부 항상성을 유지하고 세균 감염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돌고래는 산호초를 약국이자 쉼터로 이용했다. 낮잠을 자다가 가끔 깨어나 몸을 흔들어 산호 분비물 샤워를 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잠을 자거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샤워를 해서 몸을 깨끗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2009~2021년 바닷속에서 찍은 사진 수천 장을 분석 중이다. 이를 통해 돌고래들이 새끼에게 몸을 문지르는 행동을 가르치는지, 치료 물질 샤워를 많이 한 돌고래가 더 건강한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록펠러대의 에릭 에인절 라모스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돌고래의 자가 치료라는 설명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단순히 몸을 문지르는 행동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라모스 교수는 사육 중인 돌고래를 대상으로 산호 분비물의 피부 치료 효과를 시험해보라고 제안했다. 사육 돌고래는 서로 물거나 긁어 피부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아 치료 효과를 알아보기 쉽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