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이 코로나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Adobe Stock

독감 백신이 코로나 중증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전염병이 대유행하면 새 백신이 개발되기 전에 독감 백신으로 초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6일(현지 시각) “카타르 웨일 코넬 의대의 라이스 자말 아부-라다드 교수 연구진이 3만 명이 넘는 의료진의 건강기록을 분석해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 중증 위험이 90% 가까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의학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실렸다. 아직 동료 과학자들의 심사를 받고 학술지에 정식으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코로나 감염 막고 중증 위험도 낮춰

연구진은 코로나 백신이 보급되기 전인 2020년 말 카타르 의료진 3만774명의 의료 기록을 분석했다. 이중 코로나에 걸린 518명과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2000여명을 비교했다. 그 결과 독감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 감염 위험이 30% 줄고, 코로나 감염 시 중증으로 발전할 위험은 89%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바젤대의 군터 핑크 교수 연구진은 네이처에 “카타르 연구진의 분석은 독감 백신의 긍정적인 효과를 밝힌 이전 연구들이 우연한 결과일 가능성을 줄였다”고 말했다. 앞서 바젤대 연구진은 2020년 12월 ‘영국의학저널(BMJ) 근거중심의학’에 브라질에서 독감 백신이 코로나 입원 환자의 사망 위험을 줄였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을 때 과학자들은 독감이나 다른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접종하는 백신이 인체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 이른바 ‘건강한 사용자 편향(healthy user effect)’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독감 백신을 접종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건강에 더 신경을 쓴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코로나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 이 때문에 코로나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가 독감 백신 때문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아부-라다드 교수는 방역에 대한 태도가 거의 동일한 의료진을 분석해 건강한 사용자 편향을 배제했다.

계절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독감 백신은 죽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나 일부 단백질로 만든다./미 질병통제예방센터

독감 백신이 항바이러스 면역력 증강 추정

독감 백신이 왜 코로나에 효과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백신은 인체 면역체계에 특정 병원체를 미리 경험시켜 면역력을 미리 얻도록 하는 원리이다. 독감 백신은 죽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만든다. 독감 백신을 맞으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은 생기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무관하다.

네달란드 라드바우드대병원의 미하이 네티아 교수는 네이처에 “독감 백신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 외에 광범위한 항바이러스 방어력을 증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 병원체’에 독감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들에서 항바이러스 면역력이 높아진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네티아 교수 연구진은 독감이나 다른 질병 예방용 백신이 코로나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규모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구진은 건강한 사용자 편향을 배제하기 위해 브라질에서 임상시험 참가자를 무작위로 나눠 한 쪽은 독감과 홍역·볼거리·풍진 백신을 주사하고 다른 쪽은 가짜 백신을 주사하고 비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