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사람에게 감염되는 항생제 내성균의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항생제 남용이 가축과 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도르트 프리스 교수, 세미흐 베자우이 박사와 덴마크 국립혈청연구소의 소렌 페르손 박사 연구진은 24일 “농장의 돼지에서 나온 클로스트리듐 디피실(Clostridioides difficile) 균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내성균과 유전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 임상미생물학과 감염병 학술대회(ECCMID)에서 발표됐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은 현재 사용 중인 항생제에 대해 3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성을 갖고 있는 이른바 수퍼 박테리아이다. 사람의 장에 감염되면 염증을 일으키며, 특히 고령자나 입원 환자에게 치명적인 설사를 유발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7년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에 22만3900명이 감염돼 1만2800명이 사망했으며, 이로 인한 의료비가 10억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구진은 2020~2021년 덴마크 농장 14곳과 도축장에서 돼지 분변 시료 514개를 채집했다. 돼지 시료 514개 중 54개에서 디피실균이 검출됐다. 도축된 돼지보다 암퇘지와 새끼에서 디피실균이 더 많았다. 연구진은 어린 돼지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디피실균에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돼지 시료를 같은 시기 디피실균 감염으로 입원한 환자들에서 채집한 시료 934개와 비교했다. 분석 결과, 돼지에서 디피실균의 유전자형 13종이 확인됐는데 환자의 분변 시료에서도 모두 나타났다. 그중 ST11형이 가장 많고 비슷했다. 돼지 시료 21개와 사람 시료 270개에서 ST11형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그 중 16건은 사람과 돼지의 디피실균 유전자형이 동일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사소한 감염에도 항생제를 남용하면 나중에는 약이 듣지 않는 수퍼 박테리아가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농장에서 가축을 밀집 사육하면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균이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제암통제연맹은 매년 전 세계에서 75만명이 항생제가 듣지 않는 병원균에 감염돼 사망하며 지금 추세라면 2050년까지 내성균 희생자가 100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펜하겐대의 베자우이 박사는 “항생제 내성균이 실제로 돼지에서 사람으로 전달됐는지는 밝혀야 한다”면서도 “이번 결과는 농장의 가축에서 사람으로 항생제 내성의 사슬이 연결되고 있음을 확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