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올스톤 메디컬의 마스크형 전자코 리시바를 착용한 모습. 올스톤 메디컬은 케임브리지대와 함께 이 전자코로 대규모 폐암 진단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올스톤 메디컬

지난 2월 중국 과학자들이 국제 학술지 ‘미국화학회(ACS) 오메가’에 냄새 분자 감지기인 전자코(electronic nose)로 파킨슨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전자코는 인공지능과 결합해 79% 정확도로 파킨슨병 환자의 피부에서 나오는 특유의 냄새 분자를 가려냈다.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파킨슨병을 조기 진단한 것이다.

몸에서 나오는 냄새나 날숨에 포함된 유기 분자를 분석해 조기 진단이 어렵던 질병을 진단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간과 신장 질환과 식도암, 폐암, 대장암에 이어 파킨슨병과 코로나까지 호흡 검사로 감지했다. 영상 촬영과 혈액 검사에 이어 음주 검사 형식의 호흡 검사가 질병 진단의 필수 단계가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질병 진단하는 전자코

◇코로나 감염자도 80초 만에 확인

파킨슨병은 근육의 무의식적 운동을 담당하는 뇌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손발이 떨리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조기 진단만 하면 적절한 치료로 증상을 줄이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사람마다 초기 증상이 달라 다른 뇌 질환과 구별하기 어렵다.

중국 저장대 연구진은 스코틀랜드의 전직 간호사인 조이 밀른이 파킨슨병 환자 특유의 체취를 감지할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2019년부터 전자코 개발에 착수했다. 밀른은 파킨슨병에 걸린 남편에게서 전과 다른 냄새가 나는 것을 감지한 이후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서도 같은 냄새를 맡고 파킨슨병 발병을 예측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파킨슨병 환자는 피부의 피지에 특정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전에도 이런 화합물을 분석할 수 있었지만 장비가 크고 복잡해 일반 병원에서 쓰기 어려웠다. 저장대 연구진은 이번에 토스터기보다 크지 않은 크기의 전자코 장치를 개발했다.

과학자들은 이미 후각으로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고 있다. 바로 의료용 탐지견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2015년 이탈리아 연구진은 독일 셰퍼드 두 마리가 전립선암 환자의 생체 시료를 98%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2018년에는 의료 탐지견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양말 냄새를 맡고 말라리아 감염자를 70% 정확도로 찾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며,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탐지견이 소변과 타액 시료 냄새를 맡고 코로나 감염자를 96% 정확도로 진단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의료 탐지견이 코로나 감염자의 땀냄새를 가려내는 훈련을 받고 있다. 최근 개가 후각으로 코로나 감염자를 90% 이상 정확도로 탐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영국 의료 탐지견 재단

◇개의 후각, 전자센서에 구현

개는 뇌 크기가 인간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냄새를 처리하는 부분인 후각 망울은 사람보다 3배나 크다. 냄새 분자를 붙잡는 후각 수용체 단백질도 2억5000만개로 사람의 600만개를 압도한다. 덕분에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질환을 냄새로 알아챈다.

하지만 의료용 탐지견은 일반 병원에서 활용하기 어렵고 사람과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않다. 과학자들은 질병을 감지하는 개의 능력을 전자코에 옮겨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2월 네덜란드 레이덴대 연구진은 의료 기기 업체인 브레소믹스의 전자코인 ‘스피로노즈(SpiroNose)’로 코로나 감염 여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이 코로나 감염자와 비감염자의 호흡 검사를 비교해 감염자 특유의 휘발성 유기화합물 특성을 파악하도록 했다. 실제 검사에서 인공지능 전자코는 감염자 34명 중 33명을 가려냈다. 1명은 바이러스양이 전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였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도 지난해 6월 독일 에어센스 어낼리틱스의 전자코 ‘펜3(Pen3)’에 코로나 감염자의 날숨 시료를 학습시킨 결과 코로나 감염자를 80초 만에 가려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전자코가 공항이나 직장, 공연장에서 실시간 코로나 검사를 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진행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코로나 전자코 검사. 차량 탑승자가 코에 호스를 끼고 숨을 내쉬면 전자코가 80초만에 코로나 감염 여부를 알아냈다./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질병 진단하고 신약 효능도 확인

사람이 내쉬는 날숨에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3500여 종 들어있다. 과학자들은 장기가 병에 걸리면 그곳 세포가 특유의 휘발성 화합물을 방출하고 이들이 나중에 허파를 통해 방출된다고 본다. 바이오 업체들은 질병 고유의 화합물 특성을 파악하는 전자코를 개발해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영국 의료 기기 업체 올스톤 메디컬은 케임브리지대와 함께 마스크 형태의 ‘리시바(ReCIVA)’란 전자코로 환자 4000여 명의 날숨 시료를 분석해 폐암을 진단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리시바 전자코로 진행한 임상 시험에서 간경변 환자의 날숨에 감귤 껍질에 들어있는 리모넨 성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국내에서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이대식 박사가 분당서울대병원과 함께 폐암을 진단하는 전자코와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전자코는 약효 시험에도 쓸 수 있다.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날숨을 분석해 정상인의 특성을 보이는지 알아보는 방식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연구진은 2019년 브레소믹스의 전자코로 특정 항암제가 폐암 환자에 듣는지 85% 정확도로 알아냈다고 밝혔다. 올스톤 메디컬도 영국 워릭대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제약사 GSK, 아스트라제네카와 함께 전자코로 신약의 효능을 시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