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의 원자력 추진 우주선의 상상도. 군사용 위성과 심우주 탐사 우주선에 원자력 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NASA

우크라이나를 두고 미국과 러시아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러시아가 고장 난 위성을 미사일로 파괴하자 미국은 군사위성을 보호할 기술을 모색했다. 대안은 원자력이었다. 핵분열 에너지가 유사시 위성이 순식간에 궤도를 옮길 수 있도록 강력한 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주에서 원자력을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핵분열 에너지로 우주선의 추진력을 만들고, 달과 화성에서 전기를 만들 원자로를 건설하려는 시도도 있다. 우리나라도 2030년 달에 보내는 착륙선에 원자력 배터리를 장착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주가 원자력 시대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위성 회피 기동 위한 동력 제공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원자력 열 추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이끄는 블루 오리진과 제너럴 아토믹스, 록히드 마틴 같은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군사위성에 소형 원자로를 싣고 순간 기동에 필요한 동력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우라늄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핵분열하면 엄청난 열이 나온다. 이 열로 영하 섭씨 253도로 냉각된 액체 수소를 기화시켜 분사하면 지구 상공 수백㎞ 저궤도에서 통신위성 궤도인 3만6000㎞까지 몇 시간만에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위성이 가진 엔진으로 연료를 연소시키면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 며칠씩 걸린다. 연료가 충분하면 군사위성이 자주 궤도를 바꿀 수 있다. 그만큼 요격이 어려워진다. DARPA는 2025년에 우주에서 원자력 열 추진 위성을 시험할 예정이다.

미 국방부는 핵분열 에너지로 수소 가스를 가열하는 대신 전기를 만들어 이온 엔진에 적용하는 방식도 개발하고 있다. 이온 엔진은 우주탐사용으로 개발된 최신 기술이다.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 유럽우주국(ESA)의 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에 들어갔다.

이온 엔진의 연료는 제논 가스다. 태양전지판이 만든 전기로 제논 가스를 전기를 띤 입자인 이온 상태로 만든다. 분사구 끝에서 반대편 전기를 걸어주면 이온이 그쪽으로 이동하면서 추진력이 발생한다. 미 공군은 태양전지판 대신 소형 원자로로 전기를 만들어 이온 엔진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군사위성에서 넓은 태양전지판이 사라지면 그만큼 적이 탐지하기도 어려워진다.

◇심우주 탐사에도 원자력 활용 확대

원자력은 일찍이 우주탐사에 먼저 활용됐다. 1977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발사한 무인 탐사선 보이저호가 대표적이다. 태양에서 멀어지면 태양전지판도 소용이 없다. 대신 보이저호는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 발전기(RTG)’라는 일종의 원자력 배터리의 힘으로 태양계 끝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열전 발전기는 열전(熱電)소자를 이용한다. 전기를 흘리면 온도가 변하고, 반대로 온도가 변하면 전기가 흐르는 장치다. 열전소자를 이용하면 방사성 동위원소가 핵분열하면서 나오는 열로 전기를 만들 수 있다. 목성 탐사선 갈릴레이호,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 화성 탐사 로버(이동형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에도 열전 발전기가 들어갔다.

국내에서 개발 중인 원자력 전지./한국원자력연구원

우리나라도 2030년 달에 보낼 착륙선에 국산 열전 발전기를 장착하려고 연구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손광재 박사는 “열전 발전 기술은 우주탐사와 국방, 심해 탐사 등에 두루 쓰이는 전략 기술”이라며 “어느 나라도 기술이전을 하지 않아 독자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 박사는 원전에 외부 전력 공급이 끊어졌을 때 내부 정보를 파악하는 시스템도 열전 발전기로 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주탐사용 원자력 추진선도 개발되고 있다. 나사는 지난해 7월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를 통해 원자력 열 추진 우주선에 들어갈 원자로 설계를 제너럴 아토믹스 등 3개 업체에 발주했다. 2026년에는 파드메(PADME)란 이름의 우주선을 시험 발사할 예정이다. 파드메는 ‘동력 조정 시험용 화성 엔진’의 영어 약자이다.

나사는 원자력을 이용하면 무게 3.5톤의 파드메가 15분 만에 초속 12㎞까지 가속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정도 속도면 화성까지 6개월만에 도달할 수 있다. 화학연료를 쓰는 우주선보다 3개월은 빠른 속도다. 나사는 2020년대 말까지는 달에서 소형 원자로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안전 위해 반감기 짧은 연료 개발도 추진

문제는 역시 지구의 원전과 마찬가지로 안전이다. 원자로를 장착한 우주선이 발사 도중 폭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임무 궤도에 들어가기 전에는 핵분열이 시작되지 않아 일반 우주선 폭발과 같은 위험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바다에 추락하면 핵분열이 유발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해 핵분열을 억제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DARPA는 원자력 위성이 우주에서 지구대기로 추락하는 일을 막기 위해 저궤도에는 운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미 국방부는 군사 위성의 전자 장비를 열전 발전기로 가동하려는 연구도 하고 있다. 기존 열전 발전기에 쓰이는 플루토늄238은 핵무기 개발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와 공급이 쉽지 않다. 방사능이 절반으로 주는 반감기도 87.7년으로 길다. 미 국방부는 반감기가 5.3년인 코발트60을 대안으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