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인류를 위협하고 있지만 중세시대에는 흑사병이 있었다.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사망하게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최근 꽃가루 퇴적물 분석을 통해 “흑사병이 그만큼 치명적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 시각) “역사에 근거한 피해 수치가 실제 피해보다 과대 평가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의 아담 이즈데브스키 박사는 “더는 흑사병이 유럽인 절반을 죽였다고 말할 수 없다”고 지난 1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학’에 발표했다.
◇피해 심한 지역은 숲으로 변해
흑사병은 코로나 이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전염병 중 하나였다. 1300년대 중반 벼룩이나 쥐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며 약 5000만명 이상을 사망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 역사가인 요르겐 베네딕토우는 “유럽 인구의 65%를 휩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연구진은 꽃가루 퇴적물을 통해 당시 인구 상황을 추정했다. 어떤 식물이 재배됐는지를 통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구를 파악한 것이다. 14세기 당시 유럽인의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만약 흑사병으로 인구가 사라지면 농작물에서 나오는 꽃가루는 발견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방치된 농지에서는 농작물 대신 숲이 생겨나 나무들의 꽃가루들이 발견될 것이다.
연구진은 1250~1450년 사이 유럽 전역의 261곳 땅을 조사했다. 그 결과 그리스와 중부 이탈리아에서는 밀과 같은 작물의 꽃가루가 줄어들었다. 목초지의 민들레와 꽃들도 시들었다. 이후 자작나무나 참나무가 잇따라 나타났다.
황폐화된 지역들도 있었지만 유럽의 모든 지역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연구진은 “21개 지역 가운데 7개 지역만 치명적인 피해를 봤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꽃가루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일랜드나 스페인 중부, 리투아니아와 같은 곳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숲에서 나는 꽃가루는 줄어들었고 목초지와 농경지에서 나오는 꽃가루가 많아졌다. 피해 지역이 숲으로 변한 것과는 반대로 이런 지역에서는 농장으로 바뀐 것이다.
◇”역사 기록만큼 치명적이지 않았을 것”
NYT는 “이런 발견은 흑사병이 많은 역사가들이 주장한 것만큼 재앙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다만 새로운 연구에서는 피해에 대한 실제적 수치가 제시되지는 않았다.
이번 연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학자도 있다. 농작물의 꽃가루가 발견됐다는 것이 인구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존 애버스 박사는 “흑사병으로 사람이 죽고 빈 땅을 이민자들이 차지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유럽으로의 이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숫자가 적어 인구의 절반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즈데브스키 박사는 “그러려면 수십만 명이 유입돼야 하는데 인구의 절반이 죽었다는 데 어디서 왔을까”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