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룩업'에서 천문학 교수(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 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대학원생(제니퍼 로렌스, 맨 오른쪽)은 토크쇼에 나와 지구로 혜성이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지만 연예인 가십 뉴스에 묻힌다./Netflix

6개월 뒤 지구에 혜성이 충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해 말 넷플릭스가 출시한 과학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은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이 지구로 돌진하는 상황을 그렸다. 영화의 상상력이 던진 질문에 과학자들은 달 탐사를 위해 개발한 우주로켓에 핵무기를 실어 발사한다면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답했다.

미국 산타 바버라 캘리포니아대의 필립 루빈 교수는 지난 25일(현지 시각)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지구와 충돌하기까지 몇 년이 남았다면 근접 천체의 궤도를 바꾸겠지만 그 정도 크기 소행성이나 혜성을 단 6개월 안에 멈춰야 한다면 핵무기로 분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핵무기 10%면 에베레스트 크기 혜성 파괴

혜성(彗星)은 소행성(小行星)과 마찬가지로 태양 주변을 긴 타원 궤도를 따라 도는 작은 천체이지만, 꼬리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루빈 교수는 일단 혜성을 파괴하는 데 필요한 파괴력은 현재 강대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10%도 안 된다고 계산했다. 일단 무기는 충분한 것이다. 다음은 핵무기를 옮길 수단이다. 핵무기는 창처럼 생긴 관통기 1000개에 장착해 우주로켓에 실어야 한다.

엄청난 화물을 싣고 갈 수 있는 로켓은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이 2025년 우주인의 달 착륙에 대비해 발사체인 ‘스페이스 론치 시스템(SLS)’과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달 착륙선 ‘스타십’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둘 다 올해 시험 발사가 예정돼 있다. 로켓 발사는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 5개월 전에는 이뤄져야 한다. 한 달 안에 발사 준비를 모두 마쳐야 한다.

핵무기를 실은 관통기는 지구 충돌 한 달 전에 혜성이나 소행성의 가장자리에서 터져 폭발력이 중심으로 향해 동심원으로 퍼진다. 이러면 혜성이 작은 조각으로 흩어져 대부분 지구를 빗겨갈 수 있다고 루빈 교수는 밝혔다. 그는 “파편 일부는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면서도 “모두가 죽거나 일부가 죽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일부 쪽을 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픽=송윤혜

이전에도 핵무기로 다른 천체가 지구와 충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연구소의 패트릭 킹 박사는 지난해 10월 국제 학술지 ‘악타 아스트로노티카’에 “100m 길이 소행성에 핵폭탄을 터뜨려 지구 충돌을 막을 수 있음을 컴퓨터 가상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가상 실험 결과, 충돌 2개월 전에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50배 위력인 1메가톤의 핵폭탄을 터뜨리면 소행성이 산산조각 나면서 99.9%가 지구를 비껴갈 것이라고 밝혔다. 나머지는 지구로 와도 대기 마찰로 불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행성에 우주선 충돌시켜 궤도 수정

소행성 충돌은 영화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6600만년 전 길이 10㎞인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당시 지상을 지배하던 공룡을 멸종시켰다. 1908년에는 시베리아에 길이 60m 소행성 조각이 떨어져 숲 2000여㎢가 사라졌다. 서울시의 3배가 넘는 면적이 쑥대밭이 된 것이다.

물론 영화처럼 그렇게 큰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디가오는 것을 6개월 전에서야 아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나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길이 1.6㎞ 이상의 소행성은 3분의 2 이상을 파악하고 있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경로로 오고 있다면 우주선을 발사해 궤도를 수정할 수 있다. 나사는 지난해 11월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으로 ‘다트(DART)’ 우주선을 발사했다. 소형차 크기인 다트는 9월 말 지구에서 1100만㎞ 떨어진 곳에서 디모르포스 소행성에 정면 충돌해 궤도를 바꿀 예정이다. 영화처럼 우주선으로 소행성의 궤도를 바꿔 지구 충돌을 막을 수 있는지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다트 실험의 성과는 실제로 지구와 충돌할 소행성을 막는 데 적용된다. 현재 나사가 지구 충돌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는 소행성은 1999년 발견한 소행성 ‘베누’다. 나사는 베누가 2182년 확률 2700분의 1로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고 본다. 나사는 이에 대비해 베누와 충돌해 궤도를 바꿀 우주선 ‘해머’를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크기가 작은 소행성이다. 나사는 길이 140m 이상의 지구 근접 소행성 중 1700여 개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추산한다. 나사는 2026년에는 지구 주변 4800만㎞ 이내에 있는 미확인 소형 소행성을 3분의 2까지 감시할 수 있는 우주 망원경 ‘니오 서베이어’도 발사할 계획이다.

UC산타바버라 연구진의 논문./arXiv

◇혜성 충돌만큼 둔감한 기후변화

사실 영화는 기후변화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모른채 하는 현실을 비유한 것이다. 영화에서 천문학 교수(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와 대학원생(제니퍼 로렌스)은 정부가 혜성의 위협을 모른채 하자 토크쇼까지 출연해 사실을 알렸지만 그마저 연예인 스캔들 이야기에 묻혔다. 영화 제목은 양극화한 정치가 ‘하늘 쳐다보지 마’(돈룩업) ‘쳐다봐’(룩업)를 외치며 서로를 가짜 뉴스로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땄다.

과학자들은 인류를 위협하는 위기 앞에서 과학적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UC산타바버라의 루빈 교수가 이번에 사전 공개한 논문의 제목은 ‘하늘 보는 걸 잊지 마(DON’T FORGET TO LOOK UP)’이다. 늘 하늘을 보면서 지구 근접 천체를 감시해야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 대유행 전에도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생태계 파괴로 인간과 야생동물 접촉이 늘면 예상치 못한 병원체가 퍼질 수 있고 경고했다. 이에 대비해 바이러스 감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기 불편해도 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