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경기 고양시 일산 건설기술연구원의 모의극한지형실험실. 촛불 하나 밝기보다 어두운 0.98룩스 암실 안에 달 표면을 재현한 가로·세로 각각 3.5m, 7m 크기 월면토(月面土) 틀이 있었다. 분화구와 언덕 지형 속 곳곳에 돌멩이들도 놓여 있었다. 카메라 두 개를 단 로버(탐사 로봇)가 그 주위를 돌며 지형을 찍었다. 달에서 태양광이 들지 않는 영구음영(永久陰影) 지역 임무를 가정한 실험이다.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밝게 보정하면서 로버에 탑재된 컴퓨터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3D(입체) 지도가 그려졌다. 연구원 이수득 박사는 “이 로버는 카메라만으로 어두운 우주의 지형을 살필 수 있으며, 3D 지도를 통해 탐사할 길을 스스로 찾는다”고 말했다.

2022년 한국 과학이 심우주(深宇宙·지구 궤도보다 먼 우주공간)를 향한 도약에 나선다. 먼저 올해 8월 한국이 개발한 달 궤도선을 발사하면서 심우주 탐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우주정거장이나 저궤도 위성은 지구 상공 수백㎞를 돌지만, 달은 38만5000㎞ 떨어져 있어 심우주 전초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주도로 개발한 달 궤도선은 달 지표 100㎞ 상공에서 1년간 달 지형 분석 같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다른 연구기관들은 자원 문제를 해결할 우주 광물을 채취·분석하고, 미래 인류가 다른 행성에 머물 수 있는 기반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신휴성 건설연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장은 “1차 목표는 2030년 달 탐사선의 달 착륙”이라며 “위성이나 발사체를 보내는 전통적인 우주 분야를 넘어 우주 탐사 분야로 패러다임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건설기술연구원 모의극한지형실험실에서 탐사 로봇(사진 위쪽 연구원 옆)이 달처럼 어두운 환경에서 지도를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달지도 만들고 현지 자원으로 건설

달 궤도선은 달의 지형과 자원 상황을 살피게 된다. 이를 위해 궤도선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의 ‘광시야편광카메라’가 장착된다. 이 카메라가 달 표면 입자를 파악해 세계 최초로 달 표면 편광지도를 제작한다. 입자의 빛을 분석해 달 표면에서 일어나는 작은 운석의 충돌, 태양풍, 고에너지 우주선 등에 의한 우주풍화를 연구할 예정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만든 감마선 분광기도 실린다. 이를 통해 달 표면을 구성하는 원소 지도를 만든다. 생명유지에 필요한 물·산소, 달 기지 건설을 위한 자원, 달 표면의 우주방사선 정도를 지도로 표시하는 것이다. 김경자 지질자원연 박사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파악하는 것”이라며 “화성과 소행성 탐사에도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우주에서 직접 건물을 짓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건설연은 물 없이도 전자레인지 같은 기계 안에서 월면토를 구워 벽돌 모양으로 만드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김영재 건설연 박사는 “건축 재료를 우주 발사체로 실어 나르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 현지에서 재료를 조달해 건설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극한 환경 견디는 원자력 전지

심우주 탐사를 통해 알아낸 정보를 지상으로 전달할 통신·인터넷도 중요하다. 지구 주변을 도는 인공위성과 다르게 거리가 먼 달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낼 때는 수준 높은 통신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우주 탐사선과 인공위성 등을 서로 연결해 우주에서 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하게 하는 장비를 개발 중이다. 올해 달 궤도선이 실린 우주 인터넷 장비를 이용해 문자와 파일, 동영상을 한국 지상국에 전송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극한의 환경인 심우주에서도 작동하는 원자력 전지를 개발, 올해 하반기 시험위성에 장착할 계획이다. 위성이나 로버에 태양 전지판이 장착되지만, 달처럼 자전주기가 길고 밤낮의 온도 차가 매우 큰 행성이나 태양과 거리가 먼 심우주에서는 한계가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동위원소전지’는 방사성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열 에너지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온도 차로 전기가 발생하는 원리다. 손광재 원자력연 박사는 “다른 전지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고 10년 이상 수명이 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