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린 크리스마스 트리일까. 알록달록한 색이 예쁘다. 어느 집 꼬마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만든 세계에서 가장 얇은 크리스마스 트리이다.
덴마크 공대의 피터 뵈길드 교수 연구진은 올해 크리스마스마스를 맞아 탄소 원자로 이뤄진 그래핀으로 원자 하나 두께의 크리스마스 트리 그림을 만들어 지난 22일 공개했다. 길이는 14㎝이지만 두께는 0.3㎚(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하다. 주방에서 쓰는 랩보다 3만분의 1이나 얇다.
◇철보다 200배 강하면서도 투명한 필름
사진에 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들은 플라스틱 필름 위에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의 그래핀 층을 얹은 것이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벌집처럼 육각형으로 연결된 판형 물질이다. 구리보다 전기가 100배나 잘 통하면서도 철보다 200배 강해 차세대 전기전자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워낙 얇아 잘 휘어지는 투명 전극을 만들 수도 있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 가임 교수는 투명테이프를 흑연에 붙였다 떼는 방식으로 탄소 원자 한 층을 분리해 처음으로 그래핀을 만들었다. 그는 이 공로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연필심에 들어가는 흑연도 탄소로 구성된 물질이다. 그렇다고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고 그래핀을 만들 수는 없다. 뵈길드 교수는 “만약 연필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려도 그 그림은 원자 하나보다 더 두꺼울 것”이라며 “박테리아도 우리가 쓰는 그래핀보다 3000배는 두껍다는 점에서 이번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상에서 가장 얇다”고 말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뤄져 있어 진정한 의미의 2차원 물질이다. 오직 길이나 폭으로만 늘어날 수 있다. 반면 사무실에서 흔히 보는 A4 용지는 평면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3차원 물질이다. 두께가 원자 3만~6만개 정도이기 때문이다.
◇테라헤르츠파로 그래핀 품질 검사
덴마크 연구진은 그래핀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보이기 위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먼저 섭씨 1000도의 구리 박막 위에서 그래핀을 형성시켰다. 이후 다른 플라스틱 필름 위로 옮겼는데 이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도중에 손상을 입거나 오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그래핀 층의 전기전도도를 유지하면서 구리 박막으로부터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했다. 테라헤르츠파는 적외선과 마이크로파 사이에 있는 전자기파로 1초에 1조(兆) 번 진동한다. 옷이나 신발 등을 투과하면서도 인체에 해롭지 않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그래핀이 전기를 잘 통할수록 테라헤르츠파를 잘 흡수한다. 그래핀 층을 구리 박막에서 플라스틱 필름으로 옮기면서 테라헤르츠파를 쏘면 전송과정에서 전기 저항이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은 그래핀 층에서 테라헤르츠파 흡수율의 차이를 보여준다. 덴마크 공대가 개발한 이 방법은 올해 그래핀의 국제 표준 측정법으로 공인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