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흔들리는 모습만 봐도 작물이 물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다. 농부의 경험이 아니라 물리학으로 가능한 방법이다.
미국 코넬대의 정승환 교수 연구진은 “수분이 부족하면 식물의 잎끝이 말리면서 더 빨리 흔들린다”고 최근 미국 물리학회 연례 학술 대회에서 밝혔다. 연구가 발전하면 작물 상태를 점검하고 빗물이 숲 바닥까지 도달했는지 예측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선 연구는 잎이 마르면 진동 주파수가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잎이 팽팽해야 잘 떨리는데, 식물 내부의 수압이 떨어지면 잎이 처지면서 그만큼 덜 진동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탄력을 잃는 것과 같다. 이를 테면 30㎝ 자가 빳빳하면 튕겼을 때 더 많이 진동하지만 잘 휘어지면 진동 주파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연구는 정반대 현상을 보고했다. 물이 부족하면 오히려 잎의 진동 주파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두 가지 상반된 관측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정 교수는 사흘 동안 콩에 물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잎의 60%가 말려 올라가면서 뻣뻣해졌다.
잎이 말린 부분은 세포가 더 조밀하게 모여 있어 물이 전달되기 어려웠다. 끝이 말려 올라간 잎은 진동 주파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 잎에서 나머지 40%는 세포가 덜 조밀했다. 이런 잎은 진동 주파수가 이전보다 30% 떨어졌다.
2016년 스페인 연구진은 평면이 휘어지면 단단해지면서 진동 주파수가 올라간다고 발표했다. 말린 잎도 마찬가지로 마르면서 휘어지면 단단해져서 더 많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 현상을 철판으로 만든 줄자로 설명했다. 줄자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가 둥글게 말려 있다. 덕분에 얇은 철판이지만 펼치면 직선을 유지한다. 정 교수는 “A4 용지 끝을 잡으면 바로 아래로 처지지만 가운데를 둥글게 말고 잡으면 처지지 않는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앞으로 잎이 흔들리는 정도로 작물의 물 부족을 파악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농민이 적시에 물을 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정 교수는 서강대를 나와 포스텍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18년부터 코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