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들. 수컷이면 살처분되지만, 미리 유전자 교정 기술로 암컷만 병아리로 자라도록 하면 살처분을 방지할 수 있다./Pixabay

유전자 교정 기술이 한 해에 병아리 60억마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 세계 축산 농가는 경제적 가치가 높은 암탉을 얻고자 매년 엄청나게 많은 수평아리를 살처분한다. 과학자들은 유전자를 손봐서 원하는 성별의 병아리만 태어나게 하면 비인도적 살처분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제임스 터너 박사와 켄트대의 피러 엘리스 교수 연구진은 “배아 발달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처리해 원하는 성별의 동물을 출생시킬 수 있다”고 지난 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원하는 유전자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을 말한다. 길잡이 격인 가이드 RNA가 원하는 곳을 찾아가 지퍼처럼 결합하면, 캐스9이라는 효소 단백질이 해당 유전자를 잘라낸다.

암컷 쥐만 태어나게 하는 유전자 교정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쥐의 성염색체에 각각 나눠 집어넣어 원하는 성별을 골라 출생시켰다. 수컷 쥐는 XY염색체를, 암컷은 XX염색체를 갖고 있다. 가이드 RNA는 암컷의 DNA에서 세포분열에 필수적인 TOP1 유전자에 결합하도록 했다. 캐스9 효소는 수컷의 Y염색체에 집어넣었다.

수정 과정에서 가이드 RNA가 있는 X염색체와 캐스9의 Y염색체가 결합하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작동해 TOP1 유전자를 잘라낸다. 그 결과 XY염색체를 가진 수컷 수정란은 16~32세포기에서 성장을 멈추고, 나중에 모두 XX염색체의 암컷만 태어난다. 캐스9의 위치를 수컷의 X염색체로 바꾸면 XY의 수컷만 태어나게 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번 방법은 병아리뿐 아니라 젖소나 돼지 농가에도 적용할 수 있다. 축산 농가에서는 우유와 고기를 위해 암컷을 선호한다. 하지만 터너 교수는 “농업에 유전자 교정 기술을 쓰려면 법률 개정과 함께 광범위한 사회적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전자 교정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추가하는 종전 유전자 변형 생물(GMO)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유전자에 손댄다는 점에서 반감이 있다.

연구진은 농업보다 과학 연구에 먼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터너 박사는 “지난 5년간 논문 2만5000여 편이 한쪽 성별의 실험 동물만 다뤘다”며 “이번 기술을 이용하면 처음부터 원하는 성별의 실험 동물만 골라 번식시켜 불필요한 살처분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멸종 위기 동물 복원 때도 부족한 성별만 골라 수를 늘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