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구가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분홍색)을 공격하는 모습의 전자현미경 사진.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로 인해 연간 7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NIAID

전 세계에 보건위기를 가져올 수퍼박테리아를 퇴치하기 위해 넷플릭스 방식의 신약 구독서비스가 도입된다. 수퍼박테리아로 불리는 항생제 내성균은 결핵이나 패혈증, 상처 치료에 쓰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세균이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ICE)의 콤 리오나드 박사는 “항생제 내성균에 대항할 새로운 신약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넷플릭스 방식의 지원 프로그램이 내년부터 시작된다”고 지난 26일(현지 시각) 왕립의학회 주최 컨퍼런스에서 밝혔다.

◇연간 사용료 내고 신약 마음껏 처방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는 내년 4월부터 미국 화이자와 일본 시오노기제약이 새로 출시하는 항생제 신약에 대해 연간 정액 사용료를 지불할 예정이다. 매달 정액 요금을 내면 영상 콘텐츠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넷플릭스 구독서비스처럼, NHS가 연간 사용료를 내면 병원에서 항생제 신약을 자유롭게 처방할 수 있다.

NHS가 제약사에 지불하는 사용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앞서 영국 정부는 제약사에 지불하는 돈이 연간 1000만 파운드(한화 159억)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국 항생제 연구재단의 콜린 가너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NHS가 지불하는 돈은 알약을 하나 쓰든 1만개를 쓰든 아예 쓰지 않든 항생제 사용량과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가 제약사에 연간 신약 사용료를 지불하기로 한 것은 항생제 내성균에 대항할 신약 개발과 처방을 모두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동안 제약사들은 내성균에 대항할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항생제가 저가 약품이어서 이윤이 별로 남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어렵게 신약을 출시해도 일선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처방하지 않아 개발비를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료=영국 총리실

◇코로나 이후 최대 보건위기로 꼽혀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균이 나타나 갈수록 약효가 줄어든다. 내성균이 퍼지면 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 간단한 감염도 치료하기 어려워져 수술이나 암치료가 위험해진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연간 70만 명이 항생제 내성균으로 목숨을 잃는다. 유엔 항생제 내성 특별위원회는 지금 추세라면 2050년까지 수퍼박테리아 희생자가 매년 1000만 명씩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WHO는 항생제 내성균이 코로나 이후 최대의 보건 위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의료계에서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항생제 사용량이 늘면서 내성균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항생제 사용량이 그리스, 터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아 내성균 문제가 심각하다. 2019년 분당 서울대병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간 약 4000명이 항생제 내성과 관련해 사망한다.

영국에 이어 미국도 항생제 내성균에 대항할 신약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구독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미 상원은 양당 합의로 신약의 혁신성과 임상 가치에 기반해 항생제를 개발한 제약사에게 연간 일정액을 지불하는 ‘파스퇴르 법안’을 발의했다. 스웨덴도 항생제 제조사 5곳에 최소 보장액을 제공하는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