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에 흔한 흰꼬리사슴이 최근 80% 이상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위키미디어

월트 디즈니의 애니매이션 ‘아기사슴 밤비’로 유명한 미국의 흰꼬리사슴이 최근 열 마리 중 여덟 마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슴은 사람을 통해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아직 다시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겼다는 보고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천만 마리의 흰꼬리사슴이 대규모로 코로나에 감염되면 백신이 듣지 않는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는 질병의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수레시 쿠치푸디 교수 연구진은 지난 1일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에 “아이오와주의 흰꼬리사슴이 최근 80% 이상 코로나에 감염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국립수의검사연구실은 이튿날 해당 연구 결과를 검증했다고 발표했다.

◇사슴 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RNA 검출

연구진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아이오와주에서 사슴 283마리로부터 림프절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33%인 94마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23일부터 올 1월 10일까지 조사에서는 97마리 중 83%인 80마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나왔다. 이는 아이오와주 주민들의 코로나 감염 비율보다 50배나 높은 수치이다.

흰꼬리사슴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는 연구 결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소의 수전 슈리너 박사 연구진은 야생동물 정기 조사의 일환으로 올 1월부터 3월까지 미국 동부의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 뉴욕주에서 채취한 흰꼬리사슴 혈액 시료 385건을 검사했다. 그 중 40%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검출됐다.

어린 흰꼬리사슴.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기사슴 밤비로 유명한 이 동물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규모로 감염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네이처

당시 조사 결과는 사슴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실제로 감염됐는지는 확증하지 못했다. 항체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단백질이다. 사슴이 코로나에 감염됐음을 확증하려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 나와야 한다. 이번 연구진은 자동차에 치여 죽었거나 사냥꾼의 총에 죽은 사슴에서 면역에 관여하는 림프절을 채취했다. 여기서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인 RNA가 검출된 것이다.

연구진은 RNA의 특성을 볼 때 사슴이 사람을 통해 코로나에 감염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슴에 감염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형태가 같은 지역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에서 나온 바이러스와 같았다는 것이다. 다만 사슴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병적 증상을 보이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덴마크 농장에서 사육 중인 밍크들. 덴마크 정부가 코로나 감염 우려로 자국 내 밍크 전부를 살처분하겠다고 밝혔다./AFP연합

◇변이 코로나 진화할 동물 저장소 되나

흰꼬리사슴은 북미대륙에 흔한 야생동물이다. 개체 수는 3800만 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미국 동부 주에서는 골프장이나 잔디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사슴 사냥철에 해당 지역의 코로나 감염 사슴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사슴이 사냥꾼과의 접촉을 통해 코로나에 감염됐음을 의미한다.

동물이 코로나에 감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실험실 연구에서 흰족제비와 영장류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동물원의 사자와 호랑이도 사육사를 통해 코로나에 감염됐다. 덴마크 정부는 농장에서 키우는 밍크에서 코로나 집단 발병 사태가 발생하자 자국에서 키우는 1700만 마리의 밍크를 모두 살처분하기로 결정했다.

과학자들은 흰꼬리사슴이 백신을 이겨낼 수 있는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화할 수 있는 동물 저장소, 즉 병원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해 덴마크의 농장에서 키우는 밍크가 사람을 통해 코로나에 걸린 뒤 다시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긴 예가 있다. 위스콘신-메디슨대의 토니 골드버그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사슴이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다면 (코로나 대유행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