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집파리(위)가 곰팡이에 감염돼 온몸에 흰 포자가 가득한 암컷에 접근한 모습. 수컷은 곰팡이 조종을 받는 좀비 암컷과 짝짓기를 시도했다./덴마크 코펜하겐대

파리들이 창틀 위처럼 높은 곳에서 짝짓기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용케도 찾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공포영화 그 자체일 수 있다. 파리 수컷이 곰팡이가 조종하는 ‘좀비’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수컷이 암컷을 건드리면 온몸에 가득 찬 곰팡이 포자가 공중으로 날린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헨리크 데 파인 리히트 교수 연구진은 최근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에 “수컷 집파리가 곰팡이에 감염돼 죽은 암컷에게 더 많이 유인되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연에는 곰팡이의 조종을 받는 좀비 곤충들이 많다. 태국의 밀림에 사는 왕개미가 곰팡이에 감염되면 포자가 멀리 퍼질 수 있게 나무 위로 올라가 잎맥에 턱을 박고 죽는다. 병대벌레도 곰팡이에 감염되면 꽃잎을 물고 죽는다. 놀랍게도 병대벌레는 죽은 지 15~20시간 지나면 갑자기 날개를 펼친다. 다른 벌레가 이 모습을 보고 짝짓기를 시도하면 곰팡이 포자가 더 잘 퍼진다.

집파리도 뇌에 감염된 곰팡이의 조종을 받아 포자를 더 잘 퍼뜨릴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죽는다. 덴마크 연구진은 좀비 암컷에게 멀쩡한 수컷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곰팡이가 수컷을 유인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졌다. 좀비 암컷이 주머니에서 포자를 꺼내 하나씩 공중에 뿌린다면 수컷이 덤비면 주머니 자체가 흔들려 포자가 더 빨리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컷도 포자를 몸에 묻혀 더 먼 곳에 퍼뜨릴 수 있다.

연구진은 곰팡이에 감염돼 죽은 암컷과 급속 냉동으로 죽인 일반 암컷을 각각 배양 접시에 두고 수컷을 풀었다. 수컷은 곰팡이에 감염된 좀비 암컷을 5배나 더 많이 찾았다. 다음에는 같은 배양 접시에 좀비 암컷과 냉동된 암컷을 뒀다. 역시 수컷은 좀비 암컷을 선호했다. 연구진은 “곰팡이에 감염된 암컷이 수컷의 성적 행동을 극대화하는 최음제 같은 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수컷을 유인하는 화학물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불투명한 배양 접시에 파리가 오갈 수 있는 틈을 내고 안에 파리 모양 종이를 넣었다. 한쪽 종이 파리에는 곰팡이 포자를 묻혔다. 43번 실험에서 수컷 파리 4마리는 모두 포자가 묻은 종이 파리를 찾았다. 수컷 4마리가 일반 종이 파리에 모두 모인 경우는 17회에 그쳤다.

실제로 곰팡이에 감염된 파리에서는 일반 파리보다 더 많은 화학물질이 발견됐다. 하지만 아직 어떤 물질이 수컷을 유인하는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연구진은 곰팡이가 수컷을 유인하는 물질을 분리하면 장차 파리 퇴치용 덫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