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무명 시절 그린 그림이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도 덧칠한 그림 아래 숨겨진 그림을 찾은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이번에는 인공지능이 화가가 미처 마치지 못한 작업까지 대신해 최종 작품까지 완성했다.
영국의 미술품 복원업체인 옥시아 팔루스는 12일(현지 시각) “피카소 작품인 ‘맹인의 식사(The Blind Man’s Meal)’ 밑에 숨어 있던 여성의 누드화를 찾아내 인공지능으로 색채까지 구현했다”고 밝혔다.
◇X선이 찾은 스케치로 AI가 완성
1903년 작품인 맹인의 식사는 피카소의 그림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시기인 청색 시대(1901-1904)의 그림이다. 당시 무명작가이던 피카소는 늘 영양부족으로 실명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며 밑바닥 삶의 외로움과 비참함을 짙푸른 청색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옥시아 팔루스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인공지능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조지 캔과 앤서니 부라치드 연구원이 공동 설립했다. 두 사람은 X선 형광 기술을 통해 맹인의 식사 밑에 있는 여성의 누드화 윤곽을 찾아냈다.
다음에는 인공지능에게 청색시대 피카소의 화풍을 학습시켰다. 인공지능은 청색시대 피카소가 했던 붓질처럼 여성 누드화 스케치 위에 유화물감을 칠했다. 3D(입체) 프린터는 인공지능이 제공한 그림물감의 높이 정보에 따라 실제 캔버스에 유화를 만들어냈다. 이 그림은 ‘외롭게 웅크린 누드(The Lonesome Crouching Nude)’로 명명됐다.
◇기술 발전하면 전문가도 식별 불가능
캔 연구원은 “피카소가 두 그림을 그렸을 때 워낙 가난해 고가의 그림 도구를 살 여력이 없었다”며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처음 그림 위에 다시 덧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새로 밝혀진 그림 속 여성은 피카소가 1903년에 그린 유화 ‘인생(La Vie)’ 외에 여러 스케치에도 나온다.
연구진은 “피카소가 사후 48년 만에, 그리고 그가 그림을 숨긴 지 118년 만에 후손을 위해 은닉한 미술품이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다는 사실에 기뻐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옥시아 팔루스 연구진은 앞서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1917년에 그린 ‘소녀의 초상’ 그림 아래에 숨겨져 있던 여성의 초상화도 복원한 바 있다.
피카소 전문가인 도모스 아트 어드바이저의 타이 머피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은 피카소의 청색시대 그림으로 보이지만 전문가가 자세히 조사하면 진품이 아님을 알 수 있다”면서도 “인공지능의 기계학습과 3D 프린팅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더 정확한 작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복원한 작품은 13~17일 런던에서 열리는 ‘심층 인공지능 예술전’에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