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초소형 무인(無人) 헬리콥터인 ‘인저뉴어티(Ingenuity, 독창성)’가 19일 오후 4시 30분(한국 시각, 화성 시간 오후 12시 30분) 화성에서 첫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한낮에 태양전지판을 완전 충전한 인저뉴어티는 날개 두 개를 초고속 회전시켜 3m 높이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나사는 이날 인저튜어티가 공중에 뜬 모습을 수신했다.
인저뉴어티의 비행 시간은 30초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류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됐다. 나사의 인저뉴어티 책임자인 미미 아웅 박사는 “다른 행성에서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과 같은 일이 성공했다”고 밝혔다.
1세기 전 라이트 형제가 단 12초의 첫 동력 비행으로 인류 역사를 바꾼 것처럼 이번에 지구가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인류가 만든 동력 비행체가 하늘을 나는 기록을 세웠다. 이제 달과 화성 같은 지구 밖 천체를 지상뿐 아니라 공중에서 탐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구 헬기의 5~6배 속도로 날개 회전
인저뉴어티는 무게 1.8㎏, 높이 49㎝에 길이 1.2m의 회전 날개 두 개를 장착하고 있다. 지난 2월 18일 나사의 화성 탐사 로봇인 퍼서비어런스의 배 밑에 붙어 화성에 도착했다. 나사는 비행 성공 기원을 담아 라이트 형제가 사상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항공기인 플라이어 1호기에서 우표만 한 크기의 천 조각을 떼서 인저뉴어티에 부착했다.
그동안 화성 탐사에서 바퀴로 가는 로버만 있고 비행체가 없었던 것은 공기가 지구와 판이하기 때문이다. 헬기는 날개 주변으로 공기가 빠르게 흘러가야 공중으로 기체를 띄우는 양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화성 대기는 지구의 1%에 불과해 그런 힘을 만들지 못한다.
나사 과학자들은 날개의 회전 속도를 높여 희박한 공기의 한계를 극복했다. 인저뉴어티는 날개 두 개를 반대 방향으로 1분에 2500번씩 회전할 수 있다. 이는 지구의 헬리콥터보다 5~6배나 빠른 속도이다. 또 지구에서는 공기가 날개가 튀지 않게 눌러준다. 화성에는 그런 공기가 없어 탄소복합재로 지구보다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사 과학자들은 인저뉴어티가 화성으로 가기 전인 2019년 지구에서 사전 비행 시험에 성공했다. 진공 용기에 화성 대기의 주성분인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공기 밀도를 맞춘 상태에서 비행 시험을 진행했다.
◇비행 모습을 화성 주위 우주선 통해 릴레이
당초 나사는 지난 12일 비행 시험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진행된 날개 고속 회전 시험에서 명령 신호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는 문제점이 발생해 시험 비행 일자를 14일 이후로 연기했다. 나사는 그동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최종적으로 지난주 금요일 인저뉴어티의 날개를 고속으로 회전하는 시험에 성공하면서 비행 준비를 마쳤다.
나사는 이날 인저뉴어티의 비행 관련 데이터를 3시간 이상 늦은 오후 7시 50분부터 수신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나사 TV와 소셜미디어로 중계했다. 화성과 지구의 거리 때문에 생중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구와 화성 간 거리는 평균 2억5500만㎞로 전파가 오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비행 영상과 같은 대용량 데이터는 바로 지구로 전송하지 못하고, 화성 궤도를 돌고 있는 다른 우주선을 통해 중계를 하다 보니 더 지체된다”고 설명했다.
인저뉴어티는 이번 첫 비행을 시작으로 30일 동안 총 5번의 비행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최고 5m 높이에서 300m까지 비행하는 것이 목표이다. 지상을 관측하는 항법용 흑백 카메라로 첫 착륙지와 다른 제2의 착륙지도 탐색하고 컬러 카메라로 공중에서 먼 곳도 촬영할 예정이다.
◇지구 밖 천체의 공중 탐사 시대 개막
화성 탐사는 오랫동안 인공위성 관측이나 고정형 탐사선에 의존했다. 그러다가 1997년 나사의 바퀴 달린 로버 ‘소저너’가 처음으로 직접 화성 표면을 이동하면서 관측하기 시작했다. 인저뉴어티가 성공하면서 화성 공중 탐사라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 수 있다.
헬기는 로버보다 더 넓게, 위성보다 더 자세히 관측할 수 있다. 이동형 탐사 로버가 가지 못하는 곳도 탐사하고 궤도선보다 낮은 고도에서 지면을 더 상세히 탐사할 수 있다. 나사는 2030년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탐사할 때도 ‘드래건플라이’라는 이름의 무인 헬기를 운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