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 백신은 유전자 전달체로 침팬지에서 감기를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썼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반응까지 일어나면서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skynews

엔스 슈판 독일 보건부장관은 지난 8일(현지 시각) 유럽연합(EU) 보건장관회의에서 러시아와 스푸트니크V 코로나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희소 혈전 문제로 60세 미만에 대한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중단했다. 그 대안으로 러시아 백신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다.

러시아 백신과 AZ 백신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감기바이러스에 끼워 넣어 인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안전성에서 차이가 나타난 것은 유전자 전달체로 쓴 감기바이러스 종류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분석했다.

◇백신에 쓴 침팬지 바이러스가 원인일 수도

유럽의약청(EMA)은 지난 7일 AZ 백신 접종으로 희소 혈전증이 발생했음을 공식 인정했다. 이날 영국 정부는 AZ 백신 접종을 30세 이상으로 제한했다. 우리 정부도 8일부터 진행하려던 초·중·고 보건·특수교사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잠정 연기했다.

코로나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나 그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을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이다. 한 번 약하게 바이러스를 경험한 인체는 나중에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바로 중화 항체를 생산해 바로 막아낼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코로나 백신은 모두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스파이크를 인체 세포에 결합시킨 다음 안으로 침투한다. AZ 백신이나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인 얀센, 중국 캔시노, 러시아 모두 스파이크 유전자를 아데노바이러스에 끼워 넣어 인체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감기를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처음으로 침팬지의 아데노바이러스를 백신에 사용했다./CDC

아데노바이러스는 사람에게 감기를 일으킨다. 백신에는 복제를 할 수 없도록 유전자를 바꾼 아데노바이러스를 써 감기를 유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데노바이러스를 쓴 백신은 근본적인 약점이 있다. 과거 감기에 걸렸던 사람은 백신에 부작용이 적었지만 면역효과도 낮았다. 감기를 앓았던 사람은 항체가 이미 있어 코로나 유전자를 전달하기도 전에 감기바이러스가 제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AZ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를 코로나 유전자 전달체로 썼다. 인체에게 생소한 바이러스를 사용해 코로나 유전자를 전달하기도 전에 제거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백신에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AZ 백신은 코로나 유전자뿐 아니라 침팬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반응까지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유전자에 대한 면역반응에 유전자 전달체인 침팬지 바이러스에 대한 반응까지 추가되면서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독일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이 주목을 받는다. 러시아는 AZ 백신의 문제점을 사전에 봉쇄했다. 스푸트니크V 백신은 AZ 백신과 마찬가지로 인체에 무해한 아데노바이러스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집어넣은 형태이다. 역시 21일 간격으로 두 차례 접종한다.

차이는 유전자 전달체의 종류에 있다. AZ 백신은 두 차례 접종하는 백신이 유전자 전달체가 똑같지만, 러시아 백신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바이러스가 1회와 2회 접종 백신에 다르게 들어간다. 백신을 개발한 가말레야 국립전염병·미생물학연구소는 “스푸트니크V는 두 번의 접종에서 다른 종류의 전달체를 사용함으로써, 전달체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백신 효과가 감소하는 정도를 최소화 시켰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코로나 백신./위키미디어

◇과도 유도된 항체가 바이러스 대신 혈소판 공격

과학자들은 AZ 백신에서 유전자 전달체로 쓴 침팬지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강한 젊은 층에서 불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고 추정한다.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은 이날 AZ 백신 접종 제한을 발표하면서 다른 연령대는 AZ 백신 접종으로 얻는 혜택이 부작용 피해보다 크지만, 29세 이하는 달랐다고 밝혔다. 20~29세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환자가 10만 명 당 1.1명으로, 코로나 입원 환자 감소분인 0.8명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EMA는 지난 7일 AZ 백신의 혈전증 부작용을 공식 인정하면서 그 원인이 헤파린 투여 후 드물게 나타나는 ‘헤파린 유도 저혈소판증(HIT)’과 유사한 면역반응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헤파린은 혈액응고를 막으려 처방하는데, 이로 인해 유도된 항체가 혈소판과 결합해 뭉치면서 혈전을 유발하고 혈소판은 감소하는 부작용이 일어난다.

앞서 혈액학 권위자인 독일 그라이프스발트 의대의 안드레이스 그라이나셔 교수는 지난달 28일 인터넷에 사전 공개한 논문에서 AZ 백신이 혈소판에 결합하면서 혈전을 유발하고 혈소판 감소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AZ 백신 부작용을 ‘백신 유도 혈전 면역성 저혈소판증(VIPIT)’이라고 명명했다.

영국 혈전증협회의 의학책임자인 비벌리 헌트 박사는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백신으로 유도된 항체가 혈소판 표면의 단백질에 반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우주 교수는 “AZ 백신 접종 후 몸에 생긴 항체가 혈소판과 결합하면서 혈전을 유발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침팬지 바이러스로 인해 과도하게 유도된 항체 일부가 바이러스가 아닌 혈소판을 공격하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으로 10만명 당 입원환자 감소수(파란색)와 심각한 부작용 환자 발생수(붉은색)를 비교한 그래픽. 20~29세에서는 백신 접종의 이득보다 피해가 더 컸다./영국 의약품규제청

◇“의료진에 대한 백신 대안 마련해야”

영국 정부는 30세 미만은 다른 백신을 접종하도록 하겠다면서도 여전히 AZ 백신으로 인한 이득이 부작용 피해보다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젊은 층도 1차 AZ 백신을 접종했다면 2차도 맞으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젊은 층의 면역반응이 강해 두통이나 몸살 등 부작용은 예상됐지만 혈전은 완전히 다른 비정상적 부작용이라는 점에서 안전한 다른 백신 접종을 유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먼저 백신을 맞은 젊은 층 대부분이 의료진이거나 간병, 방역 요원이라는 점에서 감염자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도 안전한 백신이 우선 접종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