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이 만든 배반포 유사체(blastoid). 인간배아줄기세포로 만들었다./미 텍사스대

호주와 미국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인간 배반포기(期) 수정란과 유사한 공 모양 세포 구조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한 지 4~5일 지나면 배반포기가 되며, 이때 배아줄기세포가 생겨나 인체의 모든 장기와 조직으로 자란다.

과학자들은 인공수정에 쓰고 남은 수정란을 연구에 썼지만 구하기 어렵고 생명 윤리 논란도 있어 제약이 많았다. 이번 ‘배반포 유사체(blastoid)’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호주 모나시 대학의 호세 폴로 교수 연구진은 1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피부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인간 배반포 배아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배반포 배아를 이루는 영양외배엽과 상배엽, 하배엽 등 세 가지 세포에서 각각 특이하게 작동하는 유전자를 피부세포에 발현했다. 이렇게 만든 세 가지 세포를 함께 키워 배반포와 흡사한 구조로 만들었다.

인간 배반포 유사체 수립 과정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병원의 준 우 교수 연구진도 이날 네이처에 사람 배아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키워 배반포 유사체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다 자란 세포를 발생 초기 상태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와 실제 수정란에서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했다.

두 연구진이 만든 배반포 유사체는 실험실에서 만든 미니 장기(臟器)인 오가노이드(organoid)의 일종이다. 과학자들은 특정 장기 세포를 실험실에서 입체 구조로 배양해 약물을 시험하거나 장기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다만 다른 오가노이드는 모두 실제 장기보다 훨씬 작은데, 이번 배반포 유사체는 실제 배반포 배아와 크기와 세포 수가 흡사하다는 점이 다르다.

배반포 유사체에도 배아줄기세포가 있는 내부 세포 덩어리 구조가 생겼다. 유전자 분석 결과 배반포 유사체는 자궁에 착상하기 전의 인공수정란과 흡사했다.

호주 모나시대 연구진이 만든 배반포 유사체(blastoid). 사람 피부세포로 만들었다./호주 모나시대

미국 미시간대의 이 젱 교수와 지안핑 푸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최초로 실험실에서 인간 수정란과 유사한 모델을 만들어 인간 발생학 연구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시간대 연구진은 아직 배반포 유사체 생산 효율이 20%대로 낮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생쥐의 배반포 유사체는 배양 기간에 제약 없이 실험할 수 있지만 인간 배반포 유사체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는 수정 후 14일이 지난 배아는 법적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연구에 쓰지 못하게 한다. 미시간대 연구진은 논평에서 “인간 배반포 유사체는 필연적으로 생명 윤리 논란을 유발할 것”이라며 “과학 연구의 가치와 사회-윤리적 문제를 공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