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세포에 생긴 나노나침반 단백질(주황색)이 자기장에 따라 회전하면서 전기를 띤 이온들을 세포 안으로 통과시키는 모습의 상상도. 그 결과 신경신호가 전달되고 행동이 유발된다./IBS

자석이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을 이용해 동물의 행동을 원격 조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에서 나왔다. 뇌과학 연구는 물론 장차 파킨슨병과 뇌종양 같은 난치병 치료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연구단 천진우 단장(연세대 교수)과 이재현 연구위원(연세대 고등과학원 교수) 연구진은 2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에 “자기장을 이용해 뇌의 운동신경을 무선으로 원격 제어하는 ‘나노 자기유전학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IBS 천진우 단장 연구진이 자가장으로 동물의 행동을 제어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자기장을 우뇌에 가하면 신경세포에 있는 나노나침반이 움직이면서 신경신호가 전달되고 왼발의 동작이 세진다. 결국 쥐는 반시계방향으로 돈다. 좌뇌에 자기장을 가하면 시게방향으로 돈다./IBS

◇자기장으로 쥐의 회전 방향 통제

기술의 핵심은 자석에서 나오는 자기장에 반응해 움직이는 이른바 ‘나노나침반’ 단백질이다. 지구의 자기장에 따라 나침반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듯, 외부에서 자기장을 걸어주면 나노나침반에도 회전하는 힘이 발생한다.

연구진은 쥐에게 외부 유전자를 주입해 뇌에 있는 운동신경에서 나노남침반 단백질이 생성되도록 했다. 뇌 영상을 찍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와 유사한 장비로 쥐의 뇌 주위에 자기장을 걸어준다. 이러면 운동신경에 있는 나노나침반이 움직이면서 전기를 띤 이온이 오가는 통로가 열린다. 그 결과 신경신호가 전달되고 운동능력이 촉진된다.

자기유전학 작동 원리. 신경세포에 나노나침반 단백질(왼쪽 네모 안 파란색)을 생성시키고 자기장을 걸어주면, 회전하는 힘이 발생하면서 이온 통로가 열린다. 칼슘 이온들이 신경세포 안으로 들어오면 신경신호가 전달되면서 동작을 유발한다./IBS

실험은 원형 자기장 발생 장치 안에 쥐를 두고 진행됐다. 우뇌는 몸의 왼쪽, 좌뇌는 오른쪽의 동작을 제어한다. 쥐의 우뇌에 자기장을 가하자 나노나침반이 작동하면서 반대쪽인 왼발의 운동신경이 활성화됐다. 쥐는 반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운동능력은 5배나 향상됐다.

반대로 좌뇌의 나노나침반에 자기장을 가하면 오른발 운동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쥐가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약물이나 전기 자극을 주지 않고 자석의 힘만으로 쥐의 행동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광유전학에 버금가는 도구로 발전 기대

이번 연구 결과는 동물의 뇌기능을 연구하는 새로운 도구를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천진우 단장은 “광유전학이 뇌과학 연구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과 같이 자기유전학도 같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광유전학은 빛을 쪼여 신경세포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녹조류에서 빛을 전기로 바꾸는 단백질을 동물의 신경세포에 이식했다. 덕분에 빛을 쪼이면 원하는 대로 신경세포를 제어할 수 있다. 천 단장 연구진은 빛 대신 자기장으로 신경세포를 제어하는 자기유전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광유전학에서는 빛을 전달하는 광섬유를 동물의 뇌에 연결해야 하지만 자기장을 이용하면 그런 불편이 없다. 전선 없이 동물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로 뇌 기능을 실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진우 단장은 “자기장은 인체 침투력이 좋기 때문에 파킨슨병과 암 같은 난치병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며 “자기유전학 기술이 뇌의 작동 원리 규멍과 질환 치료 등 뇌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