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잎이 초록색을 띠는 침엽수들이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가 높다./스웨덴 우메아대

12월이 되면 집집마다 색색 장식을 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다.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침엽수는 겨울에도 잎이 초록색을 띠고 있어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다. 다른 나무는 가을에 다 잎을 떨어뜨렸는데 왜 크리스마스트리는 여전히 푸른 것일까.

스웨덴 우메아대의 스테판 얀센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23일(현지 시각)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겨울에 흡수한 빛이 광합성에 쓰이지 않고 엽록소를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광합성 체계의 구조를 재편성한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렸다.

◇엽록체 구조 재편성해 빛 손상 막아

광합성은 잎에서 초록색을 띠는 엽록체에서 일어난다. 물과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고 산소를 발생하는 명반응과, 이산화탄소와 화학에너지로 포도당을 만드는 암반응으로 나뉜다. 이중 빛이 관여하는 명반응은 빛을 흡수하는 색소인 엽록소가 있는 틸라코이드 막에서 이뤄진다.

겨울에는 엽록소가 흡수한 빛에너지가 광합성에 쓰이지 못한다. 기온이 낮아 다음 단계의 생화학 반응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잎에서 남아도는 빛에너지는 광합성 과정에 참여하는 단백질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다. 햇빛은 강하지만 기온은 여전히 낮은 초봄에 특히 그렇다.

연구진은 1년 내내 연구실 주변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솔잎을 따서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했다. 솔잎을 온도가 높은 실험실에 오래 두면 구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어 실험 직전에 연구실 근처에서 직접 따서 바로 실험했다.

얀센 교수 연구진은 기온이 낮아지면 명반응이 일어나는 틸라코이드 막 구조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명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 복합체는 광계 I 과 광계 II가 있다. 발견 순서대로 숫자가 붙여졌지만 작동 순서는 광계 II가 먼저이다.

평소에는 두 광계가 분리돼 있지만, 겨울에는 틸라코이드 막이 변해 두 광계가 물리적으로 달라붙었다. 그 결과 광계 II에서 제공한 에너지가 바로 광계 I로 전달돼 엽록소가 파괴되지 않았다. 솔잎도 푸른색을 유지할 수 있다.

◇엽록체 보호 덕분에 북반구 임업 유지

식물은 모두 남아도는 빛에너지를 열이나 형광으로 발산하는 안전 장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소나무 같은 침엽수만이 기온이 낮은 겨울에도 그런 안전 장치를 가동해 광합성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우메아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 불가리아 생물리생화학공학연구소도 참여했다. 연구진은 소나무에서 발견한 엽록소 보호 장치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가 높은 구상나무나 전나무 등에서도 똑같이 작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메아대의 얀센 교수는 “침엽수가 북반구의 혹독한 겨울에 생존하지 못했다면 땔감이나 목재를 제공하는 침엽수림도 없었을 것”이라며 “극지의 침엽수림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 나무들이 경제의 기반을 이룬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가 높은 구상나무. 구한말 서구로 전해졌다./국립백두대간식물원

◇크리스마스트리 원조는 한국산

크리스마스트리는 주로 방울열매를 만드는 침엽수인 구과목(毬果目) 나무로 만든다. 그런데 미국의 산타클로스가 보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유래한 나무일지 모른다. 현지에서 ‘한국 전나무(Korean fir)’로 불리는 구상나무가 차 트렁크에 들어갈 정도로 아담한 크기여서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덕유산, 지리산 고산지대에 자라는데 구한말 프랑스 신부 타케가 서구에 알렸다. 미국 하버드대의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 교수는 1920년 구상나무에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라는 학명을 붙이고 신종(新種)으로 발표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유전자의 규모가 인간을 능가한다. 스웨덴 과학자들은 2013년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에 많이 쓰이는 독일가문비나무의 DNA를 완전 해독해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인간의 DNA는 30억쌍의 염기로 구성된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무려 200억쌍의 염기가 있었다. 다만 기능이 있는 유전자는 인간과 같은 3만개에 그쳤다.

2015년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크리스마스트리의 게놈이 그토록 큰 이유가 같은 부분들이 반복되기 때문임을 밝혀냈다. 유전자가 중복되면 원래 기능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진화할 수 있다. 연구진은 그 예로 100m 이상 자라는 미국삼나무의 엄청난 키와 폰데로사소나무의 350~500년이나 되는 긴 수명을 들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혹한의 겨울에 살아남아 산타클로스를 맞이하기 위해 그렇게 DNA를 키웠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