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제약사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도 코로나 백신이 임상시험에서 예방효과를 입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몸 안에 오염물질이 축적된 사람은 백신을 맞아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제기됐다./로이터 연합뉴스

프라이팬에서 피자 박스까지 다양한 곳에 쓰이는 화학물질이 인체에 축적되면서 백신의 효과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코로나 백신 개발 성공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팬데믹(대유행)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필립 그랑장 교수는 17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지에 “미국인의 몸에 축적된 소량의 과불화합물(PFAS)이 백신의 면역 반응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PFAS는 달라붙지 않는 프라이팬에서 방수 의류, 피자 박스, 패스트푸드 포장지, 휴대폰과 반도체 ,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이는 화학물질이다. 종류도 5000가지가 넘는다. 간 손상과 불임,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각국에서 식품 등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랑장 교수는 “현재로선 PFAS가 코로나 백신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지만, 위험 요인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과불화합물(PFAS)의 화학구조. 프라이팬에서 가구, 식품포장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쓰이는 화학물질이다./미 매사추세츠주정부

◇디프테리아·파상풍 백신 맞아도 항체 안 생겨

그랑장 교수 연구진은 2018년 PFAS에 노출된 어린이는 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신을 맞아도 항체 밀도가 뚜렷하게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백신은 인체가 병원체를 약하게 경험해 이에 대항하는 면역단백질인 항체를 분비하도록 유도하는 원리다. 항체는 바이러스에 달라붙어 감염을 막고 다른 면역세포의 공격을 유도한다. 항체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으면 백신 효과가 없는 셈이다.

연구진은 이후 의료진 대상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또 그랑장 교수가 지난달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 메드아카이브에 먼저 공개한 연구에서는 PFAS가 폐에 축적되면 코로나 감염 환자의 증세가 더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랑장 교수는 “PFAS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디프테리아와 파상풍 백신을 네 번 접종 받고도 항체가 거의 생기지 않아 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코로나도 마찬가지라면 PFAS가 백신 반응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PFAS를 위험 물질로 분류해 단속하겠다고 공약했다. 과학계는 미국인 2억명 이상이 ‘영구 오염물질’인 PAFS가 들어있는 음식과 물을 섭취한다고 추정한다. 그럼에도 일부 주만 PFAS를 규제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환경보호국(EPA)가 시급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국내에서도 PFAS를 규제하고 있다. 지난 8월 환경부는 PFAS의 일종인 과불화옥탄산(PFOA)의 수입과 유통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잔류성오염물질의 종류’ 고시안을 행정 예고했다. PFOA는 프라이팬 코팅에 쓰인 물질이다. 2013년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서는 당시 국내에서 판매되던 프라이팬 10개 중 4개에서 PFOA가 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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