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가면 인체는 치명적인 방사선에 노출된다. 중력도 거의 없어 피가 머리로 몰리고, 근육과 뼈가 줄어든다. 과학자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물에서 인간이 혹독한 우주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우주정거장 바깥에 노출된 채로 1년 이상 생존한 미생물에서 우주 생존의 비결을 찾고 있는 것이다. 미생물은 우주기지 건설에 필요한 물질을 현지 조달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우주에서 혹 달고 돌아온 미생물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테티아나 밀로세비치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4일 국제 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에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미생물이 극한의 우주 환경에서도 1년 이상 생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우주에서 살아남은 미생물은 ‘데이노코커스 라디오두란스(Deinococcus radiodurans)’이다. 이 미생물은 지구 생명체 가운데 방사선을 가장 잘 견딘다. 우주 미생물로 최적의 후보인 셈이다.

미생물은 수분이 제거된 채 1년 이상 우주정거장 외부의 실험 장치에서 우주 환경에 그대로 노출됐다. 연구진은 데이노코커스를 다시 지구로 가져와 수분을 공급하고 지구에 있는 같은 종과 비교했다.

지구 상공 400km 궤도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 태양전지를 제외한 모듈들 중 오른쪽 아래 L자 원통형의 일본 실험모듈 키보 외부에 미생물 생존 실험 장치가 설치됐다./NASA

우주에서 살아남은 미생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표면에 혹이나 물집 같은 형태가 많이 생겼다. 연구진은 “물집이 우주 환경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물집 안에는 영양분을 얻거나 유전자를 전달하고 독성 물질을 배출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뭉치면 산다’는 말은 우주에서도 통한다. 일본 도쿄 약대의 야마기시 아키히코 교수 연구진은 지난 8월 국제 학술지 ‘첨단 미생물학’에 “데이노코커스균이 집락(colony)을 이뤄 우주 환경을 견딘다”고 밝혔다.

집락은 같은 종의 미생물이 한 장소에서 일정 기간 집단을 이뤄 사는 것을 말한다. 연구진은 우주정거장의 일본 실험 모듈인 키보 외부에 실험 장치를 두고 1~3년 데이코커스를 노출시켰다. 그 결과 두께 0.5㎜ 이상 집락을 이룬 미생물들은 3년간 우주 환경에 노출된 뒤에도 일부가 생존했다.

연구진은 집락 바깥에 있는 미생물들이 죽으면서 일종의 보호층을 이뤄 안쪽 동료들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실험을 근거로 두께 0.5㎜ 이상인 집락을 이루면 미생물이 우주정거장에서 15~45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이탈리아 우주인 루카 파르미티노가 생물채광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ESA

◇생명의 기원 밝히고 우주 탐사에도 도움

우주 미생물 실험은 생명의 기원을 찾는 연구와도 연결된다. ‘판스퍼미아(panspermia)’ 이론은 지구 생명체가 소행성에서 묻어온 우주 미생물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우주 환경에서 오랫동안 미생물이 살 수 있다면 판스퍼미아 이론도 가능하다.

데이노코커스균 실험은 2015년부터 일본어로 민들레를 뜻하는 ‘탄포포’라는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려 먼 곳까지 날아가듯, 미생물이 우주 공간을 날아와 지구 생명체를 만들었는지 확인하겠다는 의미다.

과학자들은 미생물이 우주 환경에서 수년씩 버틸 수 있다면 장기간의 화성 여행도 가능하다고 본다. 화성 생존 가능성도 확인했다. 빈대학의 우주정거장 실험 장치는 파장이 19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인 자외선만 차단했다. 화성의 대기가 190~200㎚ 자외선을 흡수한다. 화성에서 미생물이 살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화성에 미생물을 가져가는 이유는 과학 연구와 함께 자원의 현지 조달 목적도 있다. 미생물을 이용해 우주에서 유용 광물을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찰스 코켈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우주정거장에서 ‘스핑고모나스 데시카빌리스(Sphingomonas desiccabilis)’라는 미생물이 현무암에서 희토류 원소들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미생물은 수십억년 동안 암석에 산성 물질을 분비해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뽑아냈다. 그 부산물로 니켈이나 리튬같이 전자 기기에 필수적인 희토류 원소가 나온다. 구리와 금의 20%가 이처럼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채광(biomining)으로 나온다.

코켈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지구에서 이뤄진 생물 채광 실험이 어떠한 중력 상황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생물 채광은 달이나 화성에 인류의 새로운 거주지를 세울 때 현지에서 유용 물질을 생산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