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가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긴 사례가 드러난 밍크를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밝히자 다른 동물들도 코로나 저장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에 있는 영장류가 인간이 옮긴 코로나에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인간을 넘어 야생동물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체 듣지 않는 밍크의 코로나 바이러스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8일(현지 시각) “덴마크 정부의 밍크 1700만 마리 살처분 발표 후 과학자와 동물 보호 전문가들 사이에 동물들이 팬데믹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들끓고 있다”고 전했다.
과학자들은 동물에 퍼진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도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더 잘 감염되고 더 치명적인 증상을 유발하는 것이다.
일단 덴마크의 밍크에서 발견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에게서 옮겨온 것은 맞다. 또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일부 바이러스는 코로나 완치 환자의 항체도 잘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더 잘 감염되거나 더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지는 않았다. 덴마크 보건당국은 밍크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약한 호흡기 질환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문제는 처음 코로나를 유발한 미지의 동물을 제외하고는 밍크가 사람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긴 첫 번째 동물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개와 고양이, 호랑이, 페렛(흰족제비), 햄스터 등 다양한 이 동물이 사람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다시 인간에게 코로나를 옮긴 동물은 없었다.
◇멸종 위기 영장류들, 인간 바이러스에 취약
과학자들은 밍크의 코로나 감염은 인간에게도 문제지만, 야생동물에게 더 큰 위협이 된다고 본다. 밍크에서 발견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밍크끼리 잘 전염되기 위한 적응으로 보면, 다른 야생동물에서도 비슷한 변이가 발생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물에 감염되면서 원래 있던 다른 바이러스와 결합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연구진은 지난 8월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척추동물 410종을 대상으로 세포 표면의 ACE2 수용체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돌기처럼 돋은 스파이크 단백질을 ACE2에 결합시켜 침투한다.
연구진은 포유동물만 ACE2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잘 결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 중 특히 원숭이와 영장류가 결합 위험도가 가장 높게 나왔다. 지난달 캐나다 캘거리대와 미국 뉴욕대 연구진도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에 영장류의 ACE2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잘 결합한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이미 영장류들은 인간의 바이러스에 위험을 겪었다. 2013년 우간다 키베일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치명적 전염병은 인간에게 감기를 유발하는 리노바이러스 C가 옮겨오면서 비롯됐다. 침팬지는 처음 겪는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멸종위기 영장류 보호기구들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코로나 방역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우간다 키베일 침팬지 프로젝트는 사람과 침팬지 간 거리를 기존 7미터에서 9미터로 상향 조정했다. 작업자들은 집에서 통근하지 않고 보호구역 내 숙소에 머물게 했다. 야외 조사 연구도 줄였다.
다른 과학자들은 벨루가(흰고래)에서 흰발생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야생동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추적하고 있다. 미국 터프츠대의 케이트 사와츠키 박사는 “지금까지 보호시설에 있는 박쥐 등 야생동물 22종 282마리를 조사했지만 아직 코로나 확진 동물은 없었다”며 “코로나 환자가 키우는 동물을 포함해 반려동물 538마리도 조사했지만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혈액 검사에서 코로나 환자에서 발견되는 항체는 나왔다. 이는 동물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증상이나 전염 없이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말이다.
◇과학계 “밍크 살처분 지지하나 과도한 공포감은 문제”
그렇다면 밍크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정말 인간에게 위험한 것일까. 과학자들은 두 가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는 1700만 마리의 밍크를 살처분하기로 한 덴마크 정부에 대해 코로나 감염 차단을 위해 신속한 행동을 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나 과학계나 덴마크 정부의 살처분 결정을 비판하지 않았다.
하지만 덴마크 정부가 과학적 정보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불필요한 공포감을 유발했다는 데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WHO와 과학자들은 아직 밍크의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체가 백신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어떤 과학적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스위스 바젤대의 엠마 호드크로포트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많은 나라가 행동을 주저해서 코로나 감염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며 덴마크 정부의 조치를 칭찬하면서도 “상세한 정보 없이 밍크의 바이러스가 장차 백신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야 하며 세상에 불필요한 걱정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영국 과학자들은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 덴마크 정부에 밍크의 돌연변이 코로나 바이러스 시료를 요청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유전자연구소의 프랑수아 발룩스 교수는 이날 가디언에 “밍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고 덴마크의 밍크 수가 인구의 3배나 된다는 점에서 예방 차원의 살처분은 찬성한다”면서도 “밍크에서 발견된 변이 바이러스는 이미 인간에게 퍼졌지만 감염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과도한 위협을 제기한 것은 문제”라고 반박했다.
영국 정부의 신종 호흡기 바이러스 위협 자문 그룹의 피터 오픈쇼 임페이얼 칼리지 교수는 “밍크의 돌연변이는 밍크끼리 더 잘 전염되기 위한 진화적 적응으로 보인다”며 “인간에게 감염되는 것과는 무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