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농장에서 사육 중인 밍크들. 덴마크 정부가 코로나 감염 우려로 자국 내 밍크 전부를 살처분하겠다고 밝혔다./AFP연합

세계 최대 밍크 사육 국가인 덴마크가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체가 인간에게 퍼지지 못하도록 자국 내 모든 밍크를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전 세계가 새로운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지난 5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에서 자국내 밍크 1700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덴마크는 전 세계 밍크 사육의 40%를 차지한다. 덴마크는 이미 밍크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한 바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밍크에서 바이러스의 변이체가 발견됐다고 인간에게 더 위험하다고 보기는 시기상조라고 과도한 공포감을 경계하고 있다.

◇밍크에서 바이러스 돌기 변이 발견돼

덴마크 정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밍크 농장 207곳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총리는 밍크의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이미 사람에게도 감염됐다고 밝혔다. 200명 이상이 감염됐고 이중 농장 5군데 12명에게서 밍크의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이로 인해 유럽 본토로 이어지는 윌란주의 북부는 인간으로 밍크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봉쇄됐다.

프레데릭센 총리는 “돌연변이 밍크 바이러스가 공중보건과 백신 개발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덴마크 국립혈청연구소는 밍크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이 변이된 7개 변이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표면에 돋아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체 세포에 결합시켜 침투한다.

항체 치료제 또는 백신 접종으로 인해 인체에서 생성된 항체는 이 스파이크에 결합해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한다. 그런데 혈청연구소는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네 가지의 변이가 나타난 바이러스는 코로나 환자에서 추출한 항체가 잘 듣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에 감염되면 현재 개발 중인 백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미 밍크 사육이 코로나 대유행에 대한 대응과 회복을 방해할 수 있다며 제한 조치를 요구했다. 덴마크와 중국, 말레이시아 과학자들은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보낸 서한에서 “밍크 사육에 대한 감시와 제한이 시급하며, 가능한 곳에서는 사육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덴마크 농장에서 코로나 감염 우려로 밍크를 살처분하고 있다./AP연합

◇밍크와 인간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 오고 가

일단 밍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은 확실하다. 앞서 스페인과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에서도 밍크가 코로나에 감염된 사례가 나왔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6월 코로나 감염 후 농장에서 사육 중인 밍크 9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지난 7월 국제 학술지에 자국 내 농장의 밍크가 사람으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보고했다. 밍크는 농장에서 우리가 다닥다닥 붙은 상태로 사육돼 한 번 감염되면 순식간에 무리 전체로 퍼질 수 있는 환경이다.

밍크에서 인간으로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도 가능하다. 덴마크에 앞서 네덜란드에서도 밍크 농장의 인부 1명이 밍크로부터 코로나에 감염될 사례가 있다. 이 농부는 약한 호흡기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밍크 외 다른 동물도 코로나에 감염된다. 밍크와 같은 족제비과인 페렛(흰족제비)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이미 페렛은 다양한 호흡기 질환 치료제 연구에서 사람을 대신해 실험에 이용된다.

지금까지 사람이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고릴라, 침팬지, 여우, 야크, 판다, 코알라 등 포유류 60여 종이 코로나에 감염되거나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심지어 고래와 돌고래, 물개도 감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계 “밍크 바이러스, 당장 걱정할 이유 없다”

그렇다고 밍크가 당장 위험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과학자들도 많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프랑수아 발룩스 교수는 이날 트위터에서 “덴마크의 보고서는 매우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발룩스 교수는 앞서 다른 과학자들이 밍크에서 계속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가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아직 인간에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밍크의 바이러스 변이가 백신에 저항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백신이 듣지 않는 변이체가 생긴다면 밍크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제임스 우드 교수는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아직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백신이나 면역력이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영국 레딩대의 이안 존스 교수는 “바이러스 변이는 밍크에 감염되기 위한 적응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대의 칼 베르그스트롬 교수는 미국 의료전문지 STAT와 인터뷰에서 “밍크에서 바이러스 변이가 발견됐다고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더 심해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마우누스 호이니커 덴마크 보건부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밍크의 변이 바이러스가 코로나 증세를 더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수석과학자인 수미야 스와미나탄 박사는 “결과가 어찌 될지 기다려야 한다”면서도 “특정 변이가 백신의 효능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덴마크 농장에서 방역 요원들이 코로나 감염 우려가 제기된 밍크를 살처분하고 있다./AFP연합

◇과거 종간(種間) 감염 사례와는 차이

바이러스는 종종 종간 장벽을 넘는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박쥐에서 시작한 바이러스가 미지의 동물을 거쳐 사람에게 넘어왔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역시 철새와 돼지에서 비롯된다. 2009년의 신종 인플루엔자는 돼지에게 퍼져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넘어오면서 시작됐다.

같은 코로나 계열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각각 사향고양이와 낙타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되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밍크에서 사람으로 넘어온 바이러스는 처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먼저 감염된 경우다.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잘 감염되는 형태로 적응했다가 밍크로 넘어갔고, 그중 일부가 인간에게 다시 넘어온 것이다. 일부 변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인간에게 감염되는 형태가 된 코로나 바이러스여서 위험성이 급증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스위스 바젤대 사회예방의학연구소의 엠마 호드크로프트 교수는 이날 트위터에서 “공포에 빠질 필요가 없다”며 “과학자들이 정보를 입수하는 대로 상황을 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덴마크 정부의 발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STAT와 인터뷰에서 호드크로프트 교수는 “이번 발표는 바이러스에 대한 발견을 다루는 데 방식이 더 문제”라며 “정보가 부족하고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표가 나와 과학계와 대중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일은 본질적으로 흑백 논리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