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쪽 랍테프해를 항해하는 독일의 과학연구선. 과학자들은 이 바다 아래 대륙붕에서 얼어있던 메탄이 대량으로 방출되기 시작한 것을 확인했다./독일 알프레드-베게너 연구소

북극해에서 언 채로 잠자고 있던 괴물인 메탄이 깨어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 방출되면 지구온난화가 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가디언지는 27일(현지 시각) “러시아 과학연구선이 북극해 탐사에서 대륙붕(大陸棚)에 갇혀 있던 메탄이 대량으로 방출되기 시작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륙붕은 수심이 35~240m인 대륙의 연장 부분으로, 해수면의 상승과 파도의 침식 작용에 의해 운반된 퇴적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지형이다. 퇴적물이 분해되면서 방출된 메탄은 그동안 북극해의 대륙붕에 언 채로 갇혀 있었다.

◇북극해 메탄 농도 400배로 증가

러시아 과학연구선 아카데믹 켈디시호 연구진은 러시아 북쪽 랍테프해(海)의 수심 350m 지점 대륙붕에서 평소보다 400배의 농도로 메탄 가스가 방출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방출된 메탄 가스는 대부분 물에 녹지만 그럼에도 해수면의 메탄 수준은 이전보다 4~8배나 높아진 상태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탄소 원자 하나와 수소 네 개가 결합한 분자인 메탄은 대표적인 온실가스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방출량은 20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열을 붙잡아 온난화를 유발하는 효과는 20년 이상 80배나 된다. 소 네 마리가 방귀나 트림으로 방출하는 메탄의 온난화 효과는 자동차 1대가 내뿜는 배기 가스에 맞먹는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

과학자들은 북극해 아래에 얼어있는 메탄을 ‘탄소 순환의 잠자고 있는 거인’이라고 부른다. 깨어나면 온난화를 폭발적으로 일으킬 괴물이라는 의미다. 앞서 미국 지질조사국은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네 가지 요인 중 하나로 북극해의 메탄 등 수화물의 불안정화를 꼽았다. 기후변화를 불러올 괴물이 이제 냉각의 구속에서 벗어나 방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카데믹 켈디시호에 탑승한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외르얀 구스파트슨 교수는 가디언과 위성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지구 온난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지만 동시베리아 대륙붕의 메탄 수화물 시스템이 교란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과학연구선 탐사에 참가한 과학자들이 랍테프해에서 탐사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ISSS2020

◇육지와 동일한 메탄 분화구도 발견

켈디시호 연구진은 육지에서 600㎞ 떨어진 대륙붕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메탄이 방출되는 것을 관측으로 처음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길이 150㎞ 폭 10㎞ 대륙붕의 6군데 관측 지점에서 메탄이 방출되면서 퇴적층 주변에 거품 구름이 만들어진 것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수심 300m의 랍테프해의 관측 지점에서는 1리터당 1600나노몰(1나노는 10억분의 1) 농도로 메탄이 검출됐는데, 이는 바다와 대기가 안정 상태일 때보다 400배나 높은 수치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북극해의 메탄 불안정은 동북극에서 따듯한 대서양 해류가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북극해의 ‘대서양화’는 물론 인간이 유발한 기후 변동이 촉발했다.

연구진은 랍테프해와 동시베리아해의 수심이 낮은 곳에서 메탄 거품이 방출되면서 분화구 형태의 자국을 형성한 것도 발견했다. 이는 앞서 내륙의 시베리아 동토지대에서 올 가을 발견된 분화구와 싱크홀과 유사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러시아 북쪽 랍테프해(붉은색 표시)의 대륙붕에서 온실가스인 메탄 방출이 확인됐다./구글

아카데믹 칼데시호의 수석과학자인 러시아 과학원의 이고르 세미레토프 박사는 “이번에 확인한 메탄 방출은 이전보다 상당히 큰 규모”라며 “이제 기후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밝혔다.

올해 시베리아의 1~6월 평균 기온은 이전보다 섭씨 5도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에 의해 이전보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600배나 더 방출된 결과로 해석됐다. 지난해 바다의 얼음도 예전보다 일찍 녹았다. 과거 같으면 이미 바다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했을 시기지만 올 겨울에는 아직 소식이 없는 상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아직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논문 발표까지 북극해의 메탄 방출을 확증할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북극해에서 얼어 있던 메탄이 대량으로 방출되고 있음을 확인한 러시아 과학연구선 아카데믹 켈디시호. 독일의 한 항구에 정박한 모습이다./위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