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이 만발한 유채밭. 바이러스가 유채 줄기를 썩게 하는 균핵병균 곰팡이를 오히려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공생균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중 화중농업대

봄이면 제주도가 온통 노란 유채꽃으로 가득 찬다. 아름다운 유채꽃을 계속 보려면 바이러스를 퍼뜨려야 할지 모른다.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곰팡이병을 바이러스로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 화중농업대의 다오홍 장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29일 국제 학술지 ‘분자 식물학’에 “유채나 콩 같은 농작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곰팡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오히려 식물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지만, 식물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손님인 셈이다.

◇유채, 콩 죽이는 곰팡이병 막아내

유채나 콩이 균핵병균이라는 곰팡이에 감염되면 뿌리가 썩으면서 며칠 안에 죽는다. 이 곰팡이는 줄기에 솜뭉치처럼 달라붙어 조직을 녹여 영양분을 빨아 먹는다. 2009년 콩에 감염돼 5억5000만 달러의 농업 피해를 가져온 바 있다.

화중농업대 연구진은 버섯파리가 옮기는 ‘SsHADV-1’이라는 바이러스가 균핵병균에 감염되면 병원성 곰팡이가 사람 몸속의 유산균처럼 식물에 이로운 곰팡이로 변신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이러스에 먼저 감염된 곰팡이는 유채에 들어가도 해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식물의 면역 체계를 강화 시켜 작물 무게를 18%나 늘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유채밭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곰팡이가 있는 곳은 종자 생산량도 14.9%까지 증가했다.

장 교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곰팡이는 이제 식물을 죽이는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 '집'으로 인식한다”며 “바이러스가 적을 친구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채 줄기에 감염된 균핵병균 곰팡이. 솜뭉치(화살표)처럼 보이는 것이 곰팡이의 균사이다. 곰팡이에 감염되면 줄기가 썩으면서 며칠 안에 죽는다./중 화중농업대

◇다른 병원균도 막아내는 식물의 백신

특히 곰팡이에 감염된 바이러스는 균핵병균을 포함해 밭에 있는 다른 병원성 곰팡이에도 빠르게 퍼져 역시 농작물 피해를 막았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일종의 ‘식물 백신’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농작물 씨앗을 바이러스에 감염된 곰팡이로 처리하면 평생 해를 주지 않고 작물과 함께 자랄 것”이라며 “이는 신생아에게 백신을 접종해 평생 보호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곰팡이는 농작물 질병의 80%를 유발하며, 매년 전 세계 식량의 3분의 1을 파괴한다. 이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전 지구적인 빈곤 문제를 유발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장 교수는 “곰팡이병은 유채 외에 해바라기, 콩 등 다양한 농작물에 퍼져 있으며 미국에서도 만연한 질병”이라며 “바이러스를 이용한 곰팡이병 예방법은 농업 생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곰팡이의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곰팡이 중에는 식물과 서로 도움을 주는 공생(共生) 관계를 맺은 내성균들이 있다. 연구진은 내성균의 진화 과정에 이번처럼 바이러스가 이바지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