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남녀의 임상시험 결과를 별도로 분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계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성별(性別)을 고려하지 않았다가 치명적인 결과를 자주 가져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코로나 임상시험 논문들도 성별 분석 누락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의 사빈 외르텔트-프리지온 교수는 지난 14일 의학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에 “미국 정부의 임상시험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코로나 관련 임상시험 2484건 중 416건만 실험 참가자 모집 기준에 성별을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지난 6월까지 국제 학술지에 코로나 임상시험 관련 논문이 11편 발표됐는데, 모두 남녀의 임상시험 결과를 별도로 분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논문에 남녀 참가자 숫자만 표기됐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임상시험 논문 중에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코로나 치료 효과를 분석한 연구 결과도 있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코로나 대유행 초기 치료제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나중에 심장에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퇴출 당했다.
외르텔트-프리지온 교수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부작용은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했다”며 “이런 약을 임상시험 하면서 성별로 구분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치료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백인 남성 위주 임상시험이 부작용 약품 초래
캐나다 보건연구소의 카라 타넨바움 박사는 지난 25일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여성은 단지 작은 남성이 아니다”며 “여성은 호르몬이 다르고, 약물을 배설하는 신장(腎臟)은 작지만 약물이 축적되는 지방조직은 더 많다”며 “성별을 고려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아주 많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1990년대 후반 심혈관질환 치료제로 널리 판매된 디곡신은 여성에게 부작용이 더 많이 발생했다. 나중에 과거 임상시험 결과를 성별로 분석했더니, 남성은 이 약을 복용하고 사망률이 낮아지지만, 여성은 오히려 사망률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합쳐서 분석하고는 치료 효과가 있고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동안 신약 임상시험은 백인 남성을 표준으로 삼았다. 1940~1970년대 신약 임상시험에서 여성들이 약물을 복용하고 낙태를 하는 경우가 수차례 발생하자 여성을 아예 임상시험에서 배제한 것이다. 동물실험 역시 호르몬 변화가 심한 암컷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들어 임상시험에 여성도 포함하도록 규제가 바뀌었지만, 변화는 더디게 진행됐다. 1997년부터 2000년 사이에 미국 의약품 시장에서 퇴출당한 약 10개 중 8개는 여성에게 더욱 심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미국 의회의 입법보조기관인 연방회계감사원(GAO)이 원인을 조사했더니 신약 개발 과정에서 실험동물을 수컷만 사용하거나 남성 위주의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감염 치사율도 남녀 따라 달라
코로나 역시 성별에 따라 환자 수나 증세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보면 스페인에서 코로나 치사율이 80세 이상 여성은 4.6%였지만, 같은 나이 남성은 2.5배인 11.6%에 달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X염색체가 남성은 한 개지만 여성은 쌍으로 있다는 점을 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네이처에 여성 코로나 환자는 남성보다 T세포를 더 많이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백혈구의 하나인 T세포는 항체에 결합한 바이러스를 파괴해 감염과 전이를 막는다. 그럼에도 치료제 개발 경쟁 과정에서 정작 남녀 차이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남녀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자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백신 임상 시험 참여자의 인종과 함께 성별을 고려해 결과를 분석해야 한다고 제약사들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를 이기려면 신약 개발의 성차별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