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시나방이 담배꽃에 대롱 모양의 입을 뻗어 꿀을 발고 있다. 과학자들은 대기오염이 심해지면 꽃향기가 변하고 나방이 더는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대기오염이 심해지면 곤충들이 꽃향기에도 끌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기오염으로 인해 나방이 즐겨 찾는 꽃의 향기가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의 마르쿠스 크나덴 박사 연구진은 지난 4일 국제 학술지 ‘화학 생태학 저널’에 “오존 오염이 심한 곳에서는 꽃과 꽃가루받이 곤충 사이의 화학적 통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지난 20년간 인간이 지구의 생물과 대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를 인류세란 새로운 지질시대로 분류했다. 하지만 간에 의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이 생명체 간의 화학적 통신을 유발하는 자연 향기 분자에 미치는 영향은 알려지지 않았다.

◇오존 농도 올라가면 꽃향기에 흥미 잃어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미국 버지니아대 공동 연구진은 인간에 의한 오존 오염이 꽃가루받이 곤충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오존은 산화반응을 유발하는 오염물질로 인간에게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 최근에는 오존이 꽃이 곤충을 부르려고 내뿜는 향기까지 산화시켜 변화시킨다고 알려졌다.

실험에는 밤에 꽃을 찾아 꿀을 빠는 박각시나방(Manduca sexta)이 이용됐다. 박각시나방은 ‘곤충계의 벌새’로 불린다. 공중에 정지한 채 날개를 빠르게 움직이며 기다란 주둥이로 꿀을 빨아 먹는 모습이 벌새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박각시나방은 밤에 알라타 꽃담대 등의 꽃을 찾아 꿀을 빠는 과정에서 낮의 꿀벌처럼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준다. 크나덴 박사는 “박각시 나방은 꽃향기에 주로 끌리지만 시각으로도 꽃을 찾을 수 있다”며 “나방은 주로 밝은 흰색의 꽃을 찾는다”고 밝혔다. 후각이 잘못되면 시각이 대체할 수 있는지 실험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먼저 꽃향기를 분석했다. 오존이 있을 때 향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확인했다. 다음에는 인위적으로 바람을 불어주는 풍동(風洞) 장치에서 나방이 원래 꽃향기와 오존으로 변형된 꽃향기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했다.

이전 꽃향기가 나오면 나방이 그쪽으로 날아가 빨대같은 주둥이를 뻗었다. 하지만 오존에 의해 산화된 꽃향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크나덴 박사는 “놀랍게도 오존 농도가 올라가자 나방이 좋아하던 담배 꽃의 향기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고 밝혔다.

◇향기 나빠도 꿀만 보고 새로 학습

그렇다면 대기오염이 심한 곳에서는 나방들이 꽃을 찾지 못해 굶어 죽고, 꽃가루받이도 완전히 불가능해질까. 혹시 나방에게 다른 대안이 있지는 않을까.

박각시나방은 오존농도가 높아지면 꽃향기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설탕물이 보상으로 주어지면 꽃모양이 아니어도 찾았다. 후각 대신 시각으로 꽃을 찾기보다는 달라진 꽃향기를 새로 학습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박각시나방이 좋지 않은 향기가 나도 동시에 설탕물을 보상으로 주면 다시 먹이로 받아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방은 꽃모양의 실험장치에서 오존에 변형된 꽃향기가 나면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안에 설탕물이 있으면 달랐다. 심지어 변형된 꽃향기는 물론이고 모양도 꽃이 아니라 대롱 형태여도 설탕물만 있다면 주둥이를 내밀었다. 환경오염에 적응해 살 방도를 학습한 것이다.

버지니아대의 브린 쿡 교수는 “박각시나방의 이런 학습형태는 곤충이 급속히 변하는 환경에 발맞춰 학습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꽃향기가 바뀌면 꽃가루받이 곤충이 오로지 시각으로만 꽃을 찾을지, 박각시나방 외 다른 꽃가루받이 곤충도 새로운 꽃향기를 학습하는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과학자들은 대기오염 물질인 오존 농도가 높아지면 박각시나방이 이전에 좋아하던 담배꽃 향기에 더는 끌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