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사우루스 복원도./BBC2

공룡계의 제왕 티라노사우루스에게는 무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복병이 폭군을 무너지게 했을지 모른다. 바로 디스크다.

독일 본대학 지구과학연구소의 탄야 빈트리히 박사 연구진은 지난달 2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티라노사우루스를 비롯해 여러 공룡의 척추에서 뼈 사이를 이어주는 추간판 구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추간판(디스크)은 척추뼈 사이에서 충격을 완화하는 쿠션 역할을 하는 원반 구조이다. 가운데에는 젤라틴 상태의 속질핵이 있고, 그 주위를 섬유륜이라는 비교적 딱딱한 연골이 여러 겹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 추간판이 빠져나와 신경을 자극하는 질병이 추간판탈출증으로, 보통 디스크라 부른다.

◇바다의 어룡에서도 디스크 구조 확인

빈트리히 박사는 쾰른대와 프라이베르크 광업대, 러시아·캐나다 과학자들과 함께 공룡과 다른 멸종 파충류, 오늘날 동물의 척추뼈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추간판이 포유동물뿐 아니라 2억5000만년 전 나타난 어룡(魚龍) 이크티오사우루스와 6700만년 전에 출현한 티라노사우루스의 척추 화석에서도 나타났다.

1억8000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 초기의 공룡 화석에서 발견된 디스크(추간판). 노란 척추뼈 사이에 검은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디스크이다./독일 본대학

연구진은 파충류의 진화 과정에서 척추뼈 사이에 있던 부드러운 조직이 3억1000만년 전 공룡과 포유류 조상이 갈라지는 시기부터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오늘날 뱀이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는 척추에 추간판이 없다. 대신 사람의 팔다리 관절에서 보듯 공 모양 뼈가 푹 파인 소켓 형태의 뼈에 들어맞는 구상관절을 갖고 있다. 관절 사이에는 연골과 윤활액이 있다. 덕분에 파충류는 디스크를 앓지 않는다.

빈트리히 박사는 “추간판이 구상관절로 대체된 것은 아마도 손상되기 쉽기 때문일 것”이라며 “티라노사우루스는 디스크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고 추정했다.

반면 치골 구조가 오늘날 새처럼 평평한 조반목 육식 공룡들은 구상관절과 함께 원통형 뼈가 오목한 뼈에 결합하는 안장관절을 갖고 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치골이 앞을 향한 용반목 육식공룡이다. 이와 함께 목이 긴 대형 초식 공룡 역시 구상관절을 갖고 있어 척추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디스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빈트리히 박사는 “이번 연구는 인간을 의학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며 “결국 인간의 신체는 불완전하며, 질병은 인간의 오랜 진화사를 반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