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를 집값 과열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고강도 규제책을 쏟아내자,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풍향계’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아파트 값이 상승세를 멈추며 하락 초읽기에 들어갔다. 서초·송파도 집값 급등세가 빠르게 진정되고 있으며, 경기 과천시는 88주 만에 아파트 값이 하락했다. 오는 5월부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가 재개되고, 금융 당국이 다주택자 대출 연장을 제한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이 가해지자 강남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단지에선 매물이 경쟁적으로 나오며 호가가 억 단위로 빠지는 등 현장 분위기도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전문가 의견 역시 당분간은 집값 조정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5월이 지나면 다주택자 매물이 나오기 어려워지는 구조인 만큼, 내 집 마련을 준비 중인 사람은 지금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브레이크 걸린 강남 집값 상승세
2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1% 올랐다. 이는 사실상 보합 수준으로, 이 대통령의 부동산 관련 강경 발언이 나오기 직전인 지난 1월 19일(0.2%)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상승세가 완전히 꺾인 것이다. 지난해 1월 13일(0%) 이후 55주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주변 지역 상황도 비슷하다. 서초구(0.05%), 송파구(0.06%), 용산구(0.07%) 등 이른바 ‘상급지’로 통하는 고가 주택 밀집 지역도 주간 상승률이 일제히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준(準)강남’이라 불리는 과천은 0.03% 하락하며 88주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강남권 전체가 조만간 하락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시장이 급변한 가장 큰 이유로 정부의 강력한 규제 메시지가 꼽힌다. 이 대통령은 1월 말부터 공식 회의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재개, 임대 사업자 혜택 축소 등을 주문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토지거래허가제의 실거주 의무를 유예해 세입자가 있는 집도 팔 수 있도록 보완 조치를 내놓자 다주택자들 사이에서 “퇴로가 열렸을 때 팔자”는 심리가 확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는 매물 추이로도 확인된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7726건으로 이 대통령이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공식화한 지난 1월 23일(5만6219건)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20.4% 급증했다. 같은 기간 매물이 10% 이상 늘어난 곳은 서울이 유일하며, 증가 속도 역시 전국 2위인 세종(5.1%)의 4배에 달한다. 금융당국이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연장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매도 압박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호가 수억 원 낮춘 매물도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쌓이면서 가격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강남 주요 단지에서는 기존 최고가보다 수억 원 낮은 가격에 매물이 나와 있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12월 42억7000만원에 거래되며 최고가 기록을 썼지만, 지금 나와 있는 매물의 최저 호가는 37억5000만원이다. 불과 두 달 사이 호가가 5억원 넘게 빠진 셈이다. 압구정동 현대 6·7차 전용 144㎡도 지난해 7월 실거래가가 81억원까지 치솟았지만 지금은 70억원에 나와 있는 매물도 여럿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다주택자 매물로 인해 5월까진 집값 조정 국면이 이어지겠지만 그 이후로는 매물 잠김과 전·월세 상승으로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며 “급매물이 나오는 지금이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인 실수요자에게는 오히려 기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