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부활과 보유세 인상을 앞두고 서울 강남권 주요 단지에서 호가를 수억원 내린 급매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실수요자 표정은 밝지 않다. 대출 규제로 강남권은 사실상 접근 불가여서 실수요자들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서울 외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강 벨트를 중심으로 아파트 매물이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12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2357건으로, 연초 대비 9.3% 증가했다. 서울 송파구가 33.1% 늘어나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이어 광진구(30.7%), 성동구(29.4%), 서초구(23.3%), 강남구(20.5%) 등 아파트값이 비싼 지역에서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강남권에선 호가를 대폭 낮춘 이른바 ‘급매’가 등장했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110㎡의 경우 호가가 29억원까지 내려온 매물이 올라왔다. 같은 면적이 지난해 12월 35억15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6억원 이상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7월 신고가인 89억원에 마지막으로 거래됐던 압구정 현대6·7차는 현재 80억원대 초반에 매물이 나왔다. 압구정 현대3차 전용 82㎡ 역시 지난해 11월 60억7000만원으로 신고가를 경신했지만, 최근 53억원대에 팔겠다는 매물도 등장했다.
단기간에 호가를 낮춘 매물이 늘어난 배경엔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강화가 있다. 정부는 12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및 보완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5월 9일 예정대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를 종료하되, 시한 내 매도 계약한 뒤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기존 규제지역은 4개월, 신규 규제 지역은 6개월 안에 잔금 및 등기까지 마치면 양도세를 감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퇴로가 열리자, 세입자 문제로 매도할 수 없었던 다주택자들이 서둘러 매물을 내놓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다주택자 매물 증가가 서울 집값 안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선 대출이 막혀 있어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이런 매물을 잡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억원 초과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을 최대 2억원까지만 받을 수 있어 강남의 고가 아파트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 실수요자가 몰리는 노·도·강은 여전히 중저가 아파트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실수요자가 접근 가능한 지역은 오히려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인 30대 회사원 이모씨는 “대책 발표가 나자 퇴근하고 바로 노원구에 있는 10억원 이하 아파트 매물을 보러 갔는데, 오히려 호가를 더 올리려는 분위기”라면서 “강남에서 급매가 아무리 나온다고 해도 그들만의 리그이고, 정작 집이 필요한 사람이 찾는 외곽 지역은 이제 막 상승장의 온기가 옮겨붙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 외곽에선 신고가가 속속 출현하고 있다. 노원구 공릉동 태릉해링턴플레이스 전용 84㎡는 지난달 11억9500만원(12층)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최고가 11억6000만원(15층)보다 3500만원 오른 가격이다. 성북구 래미안길음센터피스 또한 지난달 30일 59㎡가 14억1000만원(9층)에 거래돼 최고가를 기록했다.
거래도 활발하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방침을 밝힌 1월 23일 전후 2주간의 토지거래허가 신청 건수를 분석한 결과, 동작구가 99건에서 154건으로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이어 성북구(244→292건), 노원구(491→532건), 양천구(142→176건), 도봉구(106→134건) 순으로 서울 외곽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강남구(119→97건)는 감소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문재인 정부 때는 집도 안 보고 전화로 무조건 매수를 했다면, 지금은 실수요자들이 사려고 하기에 일단 집을 보고 결정한다”면서도 “다만 팔려는 사람도 아직 가격을 낮춰 빨리 처분하기보다 시장을 지켜보며 제값을 받겠다는 분위기여서 당장 집값이 떨어지긴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