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부영그룹 시무식에서 이중근 회장이 자녀를 낳은 직원에게 장려금을 전하고 있다. 이날 부영그룹은 자녀 1인당 1억원씩, 총 36억원을 전달했다./ 박성원 기자

5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부영그룹 시무식에선 갓난 아기들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부영그룹에 다니는 아빠, 엄마 품에 안겨 온 신생아들이었다. 매년 입춘에 시무식을 하는 부영그룹은 2024년 시무식에서 직전 3년간 자녀를 낳은 직원들에게 총 70억원을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출산 자녀 1명당 ‘장려금 1억원’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는 지난해 출산한 직원들에게 총 36억원이 전달됐다. 연년생이나 다둥이를 얻어 누적 2억원을 받은 직원도 11명이나 나왔다. 지급액은 전년(28억원) 대비 30% 늘었다. 올해까지 누적 지급액은 총 134억원.

출산 장려금 도입 이후 부영그룹 내 출생아 수는 2021~2023년 연평균 23명에서 지난해 36명으로 약 60% 늘었다. 첫 행사 당시 10명이 안 됐던 시무식의 아기 참석자는 지난해 14명, 올해 16명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부영그룹이 하나의 국가라면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연간 신생아수)이 18명이다. 지난해 한국 전체 조출생률(약 5명)의 3.6배다.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출산 가능 연령층이 밀집된 조직에서 금전적 지원이 출산 결정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다. 장려금 도입 이후 신입·경력 지원도 5배로 늘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앞으로 지원금을 깎을 생각은 없으며 합계 출산율 1.5명이 될 때까지 견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영 “셋째 낳으면 영구 임대주택 제공”

5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부영그룹 시무식에서 출산장려금 수혜직원들이 자리하고 있다./박성원 기자

부영의 억대 출산 장려금은 도입 첫해부터 화제였다. 액수도 이례적이었지만, ‘실제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조직의 분위기와 구성원들의 선택을 바꾸는 쪽으로 나타났다. 출산을 미뤘던 직원들의 결정은 달라졌고, 젊은 구직자들의 지원은 폭증했다.

부영 직원들은 “회사 지원이 출산을 결심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첫째가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상준(45)씨는 지난 12월, 9년 만에 둘째를 얻었다. 신혼 땐 둘째 계획이 있었지만 출산에 따르는 아내의 경력 단절 등으로 인해 꿈을 접었던 터였다. 동씨는 “회사 지원 소식에 아내와 상의해 둘째를 낳기로 결심했다”며 “임신 기간 생활비와 육아용품 구입 등을 위해 2000만원 대출을 받았는데 오늘 받은 돈으로 바로 갚을 수 있게 됐다. 셋째가 생긴다면 더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말했다.

2024년 9월 첫째 아들을 얻은 데 이어 지난달 둘째 딸을 낳아 총 2억원을 받게 된 김제혁(28)씨는 출산 장려금 때문에 부영으로 이직한 사례다. 김씨는 “둘째를 갖는 데 가장 고민이 됐던 금전적 부분을 회사가 해소해줬다”며 “결혼할 땐 ‘한 명만 낳아 잘 키우자’는 생각이었는데 형제자매가 있어야 아이가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에 둘째를 낳게 됐다”고 말했다.

부영의 실험은 세금 제도도 바꿨다. 장려금 1억원이 근로소득으로 분류되면 약 4180만원의 소득세를, 증여로 보면 1000만원의 증여세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제도적 허점이 드러나면서 논쟁이 촉발됐다. 회사도 비용 처리를 할 수 없어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허점이 지적됐다. 결국 정부는 기업이 지급하는 출산 지원금에 대해 최대 2회까지 전액 비과세하는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했다. 직원은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회사는 비용 처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영이 물꼬를 트자 파격적 출산 장려금은 재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크래프톤이 최대 1억원의 출산 지원책을 내놨고, 쌍방울그룹과 KB자산운용 등도 수천만원대 장려금이나 매월 수십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부영은 한 걸음 더 나가 셋째를 낳은 직원에게는 1억원 대신 영구 임대주택에서 무상 거주할 권리를 주는 선택지도 마련할 계획이다. 부영 관계자는 “지금의 신생아 증가세가 유지된다면 셋째 혜택을 보는 직원도 곧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