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인천의 한 신축 빌라를 분양받으려던 30대 김모씨는 분양 업체에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김씨가 현금이 부족하다고 하자 분양 업체 직원은 “분양가보다 높은 금액에 계약서를 쓰면 대출이 더 나온다”고 했다. 분양가는 2억6900만원이지만, 1억원을 높인 계약서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꽉 채워 대출을 받으면 현금은 거의 없어도 된다는 설명이었다. 부풀린 계약금 1억원은 분양 업체가 김씨 지인 3명의 계좌로 적당한 명목으로 나누어 입금하고, 김씨가 이 돈을 대출금과 합쳐 분양 대금으로 납부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최근 수도권 빌라 시장에서 분양가보다 높은 금액에 계약서를 쓰는 이른바 ‘업(UP) 계약’이 성행하고 있다. 전세 사기 여파로 주택 매매 수요가 아파트로 쏠리고, 대출 규제마저 강화돼 빌라를 팔기 어려워지자 분양업자들이 “현금 없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하며 이 같은 계약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금 없이 내집마련”...빌라 업계약 주의보
업계약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대출 규제가 강화된 여파다. 지난해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체가 규제지역이 되면서 LTV가 40%로 줄었고, 인천 등 비규제지역도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게 제공되던 우대 정책이 폐지되면서 대출 한도가 10%포인트 줄었다. 한 분양 사업자는 “요즘 신축 빌라는 적게는 3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2억원씩 가격을 높여 계약을 체결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신축 빌라는 시세 파악이 어려워 업계약을 해도 은행에서 대출받는 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업계약은 단순한 편법이 아니다. 적발될 경우 취득가액의 최대 10% 과태료가 부과되고, 대출도 회수될 수 있다. 자금 여력이 없는 실수요자는 사실상 집을 잃게 된다. 허위 계약을 공모한 경우 사기죄가 적용돼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까지 받을 수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업계약은 팔리지 않는 빌라를 실수요자에게 떠넘기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자금 문제를 해결하려다 범죄에 가담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분양가 90%까지 대출 가능’ 등의 문구를 내세운 매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온라인 빌라 분양 홍보 사이트가 적지 않다. 경기 외곽뿐 아니라 서울 강서구나 마포구에서 분양가 2억원이 넘는 빌라를 현금 1000만~4000만원으로 매수할 수 있다는 게시도 눈에 띈다. 경기 고양시 소재 1억8900만원짜리 빌라는 500만원만 내면 입주 가능했다. 무작위로 5개 빌라를 골라 분양 담당자에게 문의했는데, 모두 업계약 조건이었다.
◇적발되면 과태료에 형사처벌까지
업계약이 특히 빌라에서 기승을 부리는 건 시세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실거래가·단지 시세가 명확해 은행 심사 과정에서 업계약이 걸러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빌라는 동일 입지·유형의 비교 사례가 적어 업계약에 취약하다. 특히 부동산 거래 경험이 없고, 집값 급등으로 박탈감이 큰 청년·신혼부부들이 피해를 당할 위험이 크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이행 거절’ 건수는 지난해 69건으로 전년(43건)보다 60% 이상 증가했다. 금액도 80억원에서 137억원으로 71% 급증했다. HUG는 “거절 사례 대부분이 업계약으로 매매가를 부풀린 뒤, 이를 기준으로 전세가를 높게 책정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업계약으로 분양받은 빌라에 매수자가 거주하거나 월세로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제 업계약 규모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현금 여력이 없는 무주택자 입장에서 업계약으로라도 집을 장만하는 것이 매력적일 수 있지만,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전문가들은 “현금 없이 집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의심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