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로 연일 부동산 관련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집값 잡기 총력전을 펴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입법 현장은 반년 가까이 사실상 멈춤 상태다. 현 정부 주택 공급 청사진인 지난해 ‘9·7 대책’의 후속 법 개정안 대부분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아직 발의조차 안 된 경우도 있다. 공급 정책 추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국회는 뒷짐을 진 상황에서 대통령만 부동산 안정을 외치는 형국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오전 8시 21분 X(옛 트위터)에 서울 개포동에 최근 시세보다 4억원 낮은 ‘급매’가 나왔다는 내용의 언론 기사를 올렸다. 이 대통령이 오는 5월 9일 만료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해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도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오전 8시 25분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국민의힘을 향해 “망국적 부동산 투기 옹호도, 시대착오적 종북몰이도 이제 그만 하시면 어떠냐”는 글을 올렸다. 국민의힘이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주택 공급안에 대해 ‘부동산 배급에 만족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하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강경 메시지와 달리 부동산 시장 안정을 뒷받침할 공급 대책은 지지부진한 입법 때문에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올해부터 매년 수도권에 27만호를 공급한다는 9·7 대책을 뒷받침할 LH(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 23건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4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19건 중 17건이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이 중 대부분은 법안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건은 아예 법 개정안 발의도 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SNS를 통해 다주택자를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하는 사이, 정작 정책의 본질인 공급 대책은 입법 지연이라는 늪에 빠져 있는 셈이다.
◇말로만 주택 공급, 후속 입법은 하세월… 23건 중 국회 통과 4건
이재명 대통령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재개를 언급한 지난달 23일부터 2일까지 11일 동안 부동산 관련 글 11개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지난 주말 동안에만 4개를 올렸고, 이날 또 2개를 추가했다. 여권 내부에선 이 대통령의 행보가 6·3 지방선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여당 관계자는 “집값을 잡지 못하면 선거에 불리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적어도 지방선거 때까지는 어떻게든 집값을 묶어두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대통령의 메시지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집값 안정에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본다. (필요할 경우) 세제 개편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고, 정청래 대표도 2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SNS를 통한 정책 메시지를 뒷받침할 당의 대책과 계획을 세워 철저하고 세밀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한 정책위의장에게 지시했다고 민주당은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SNS 정치’에 대해 “메시지가 너무 많으면 정책이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답답한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대통령의 메시지가 가벼워질 수 있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부활만으로는 장기적으로 부동산 안정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며 “양도세 중과를 부활하되 규제 지역의 대출은 일부 풀어주는 등 정교한 정책 설계가 아쉽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에 대해서는 “5월 9일 종료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보유세 인상’ 등 추가적인 부동산 규제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여당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보유세 인상 관련 질문에 “보유세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최종적으로 정말 이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을 때 (인상을) 생각하는 그런 전제이고, 지금은 여러 가지 정책의 실효성을 더 강조하는 단계”라고 했다.
◇대통령의 SNS 정치, 여권서도 우려
대통령의 다급한 메시지와 달리, 공급 대책을 뒷받침할 입법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7 대책을 통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135만호(연평균 27만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LH법 개정안 등은 대책 발표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에 묶여 있다. 공공택지 공급 확대, 3기 신도시 조기 분양,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 등 핵심 과제 대부분이 법 개정 없이는 추진하기 어렵다. 건설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첫 사업이 나올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는 말이 나온다.
LH법 외에도 주택 공급의 막힌 혈을 뚫는 데 꼭 필요한 정책들이 늦어지고 있다. 공공택지 토지 보상 속도를 높이기 위한 법 개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는 9·7 대책에서 보상에 협조하면 장려금을 주고, 불응할 경우 금전적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내놓은 ‘1·29 대책’의 핵심인 도심 노후청사 및 유휴부지 개발에 필요한 특별법도 지난해 12월 발의됐지만 상임위 논의는 시작조차 안 됐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규제보다 주택 공급이 절실한데, 입법 지연으로 정부 대책이 제때 시행되지 못하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본다”며 “쟁점 법안이 아닌 것부터 신속히 처리해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 공급 시급한데, 법 개정 하세월
이 대통령이 연일 다주택자들을 압박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소한의 퇴로는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대통령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이미 예고됐던 것’이라고 했지만 상당수 다주택자는 지난해 ‘10·15 대책’ 이후에 중과 대상이 됐다. 양도세 중과 대상이 ‘조정대상지역(조정지역)’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10·15 대책 전 조정지역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뿐이었는데,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까지 전격적으로 규제 대상이 됐다. 강남이나 용산이 아닌 지역에 집 여러 채를 보유한 다주택자들까지 갑자기 규제 대상이 됐고, 양도세 중과 이슈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유예 종료’ 발언이 나오면서 100일 남짓한 시간 안에 집을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문제는 팔고 싶어도 팔기 어렵다는 점이다. 조정대상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이 겹치면서 매수자의 실거주 의무가 생겼고, 세를 끼고 있는 주택은 매각 자체가 쉽지 않다. 세입자를 내보내야 거래가 가능한데, 전·월세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퇴거에 동의할 세입자를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지금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라는 건 팔다리 묶어놓고 도망가라고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매물도 크게 늘지 않고 있다. 2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5만6984건으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다주택자 규제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지난달 21일(5만6657건)에 비해 300건 남짓 늘어나는데 그쳤다. 10·15 대책 이전 7만건, 지난해 12월 6만건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일부 지역에서 급매물이 나오지만 다주택자들이 경쟁적으로 매물을 쏟아내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주택자의 매물을 유도하고 싶다면 한시적으로라도 토지거래허가제를 유예해준다거나, 가격을 낮춰서 팔면 양도세 혜택을 주는 식의 퇴로를 만들어주는 정책을 병행하면 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