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기 과천시 과천우체국 앞에는 ‘경마장·방첩사 부지 9800호 주택폭탄, 교통지옥·하수대란 온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주변 아파트 단지와 거리에도 ‘경마장 이전·주택 공급 결사 반대’, ‘과천을 교통지옥으로 만들지 마라’ 등 수십 개의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정부가 과천 경마장과 방첩사령부 부지에 9800가구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자,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과천 시민 송모(36) 씨는 “지금도 출퇴근길이 포화 상태인데 1만 가구 규모 미니 신도시가 추가되면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정부가 발표한 6만 가구 주택 공급 대책을 둘러싸고, 핵심 후보지 주민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용산과 노원, 경기 과천 등 서울과 수도권의 알짜 공공부지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구상 자체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교통·환경·도시 기능 훼손 우려를 둘러싼 갈등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이번 공급 정책의 성패를 가를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택 공급 대책 두고 주민 반발 확산
과천 지역에서는 이미 주암·과천지구 등 2만5000가구 규모의 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공급이 발표되자 주민들은 교통 인프라 확충 없이 주택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경마공원 이전을 반대하는 주민 1000여명이 참여한 단체 채팅방과 시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오는 7일에는 대규모 집회와 삭발식도 예고된 상태다. 집단 행동에 참여 중인 김동진(55)씨는 “교통난이 우려돼 결국 철회됐던 사업이 얼굴만 바꿔서 다시 추진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서울 용산에서는 국제업무지구에 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인근 주민들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에 나섰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진행된 동의서 모집에는 사흘 만에 2206명이 참여했다. 공급 결정의 근거와 유관 기관 협의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다. 정보공개청구에 동의했다는 이모(40) 씨는 “국제업무지구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 것으로 기대했는데 결국 ‘닭장’ 아파트만 늘어나 강남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 노원구 태릉CC 인근 주민들도 현수막 게재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는 등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태릉CC는 문재인 정부 때도 1만 가구 공급 계획이 나왔다가 교통·환경 문제로 장기간 표류했던 곳이다. 인근 별내·갈매지구 입주로 교통 혼잡이 심화된 상황에서 개발 계획이 다시 거론되자 주민 반발이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주택 공급 동력, 주민 신뢰 회복에 달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의 성패가 ‘공급 규모’가 아니라 ‘실행 과정’에서 갈릴 것으로 본다. 6만 가구는 숫자일 뿐, 실제 입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신뢰를 주는 것이 집값 안정을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는 분석이다. 과거에도 정부는 도심 유휴부지와 공공부지를 활용한 공급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지만, 주민 반발과 절차 지연으로 상당수가 표류했다. 이번 대책마저 주민 반대에 막혀 표류하면 시장에는 “결국 공급은 안 될 것”이라는 신호를 줘 오히려 ‘패닉 바잉’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8·4 대책’에서 수도권 유휴부지에 13만 2000가구를 짓겠다고 했지만, 착공에 들어간 건 서울 강서구 마곡 부지가 유일하다. 2018년 문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도 당초 2025년 첫 입주 목표였지만 보상 지연과 GTX 구축 차질로 발표 8년이 지나도록 아직 입주한 곳이 없다. 그나마 인천 계양 지구에서 이르면 올 연말 입주가 시작되고, 나머지 지역은 2027년이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가 이번 대책을 성공시키려면 주민들이 우려하는 교통 인프라 확충 등에 대한 확약을 최우선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라며 “용산 등 핵심 지역 한 곳이라도 집중해 정부가 발표한 주택 공급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주택 공급이 예정된 지역마다 연차별 ‘액션 플랜’을 공개하고 이를 하나씩 이행함으로써 정책적 신뢰를 쌓아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