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거의 10%씩 집값이 치솟는 도시가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나이트프랭크가 전세계 주요 150개 도시의 주택가격을 조사한 결과, 2022년 1분기 기준으로 연간 집값 상승률 1위 도시는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이다. 연간 122%가 올랐다. 2위와 3위 역시 튀르키예의 앙카라와 이즈미르로, 각각 111.7%와 105.9% 가 급등했다. 터키 정부는 최근 영어 단어 터키(turkey)가 겁쟁이, 패배자 등을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는 이유 등을 들어 국가명을 튀르키예로 변경했다.

캐나다 핼리팩스(34.7%), 미국 피닉스(32.9%)와 마이애미(29.7%)가 뒤를 이었다. 나이트프랭크의 2021년 3분기 조사에서 서울의 연간상승률은 32.3%로, 세계 5위를 기록했다. 서울은 이번 조사에서는 연간 7.6% 올라 86위를 기록했다.

터키중앙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2월 기준으로 터키 전국의 연간 집값 상승률은 96.4%이다. 터키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인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 헷지를 위해 주택을 사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초인플레이션 시대 주택을 사는 것이 자산보존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초인플레이션- 금리 인하 결합으로 주택수요 급증, 집값 폭등 악순환

터키의 연간 물가상승률(5월 기준)은 73.50%이다. 교통비가 107.6%, 식료품비가 91.6%, 생활용품비가 82.08% 올랐다. 최저 임금도 50% 올랐다. 터키의 고물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도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법칙을 무시한 금리인하이다.

물가가 치솟으면 일반적으로 금리를 올리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소신으로 금리 인하를 주도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19%이던 기준금리를 14%로 낮췄다. 금리인하로 달러가 유출되면서 터키리라화의 가치가 급락, 수입물가가 폭등했다.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으로 주택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산가격이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더 급등하고 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돈의 가치가 시간이 지날 수록 쪼그라들지만,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사두면 자산가치를 늘릴 수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나이트프랭크는 세계 집값 지수(global-house-price-index)보고서를 통해 2022년 1분기 기준으로 터키의 연간 집값 상승률이 110%,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집값 상승률이 30.3%라고 밝혔다. 주택보유가 인플레이션 헷지를 넘어 자산가치를 늘리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여기다가 해외수요도 몰리고 있다. 터키는 외국인들이 부동산을 구입하면 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부자들이 터키 부동산을 대거 구입하고 있다. 집값이 폭등했다고 하지만, 터키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터키 부동산은 외국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터키 수도 앙카라의 한 환전소 앞에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중앙은행의 계속된 기준금리 인하로 터키 리라화는 올해 들어 미국 달러화 대비 가치가 절반 이하로 추락했으며, 물가는 치솟고 있다.

◇대부분 국가, 초인플레이션에 고금리 대책으로 집값 하락

하지만 초인플레이션이 집값을 밀어 올린 터키의 사례는 예외적이다.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리가 급격하게 치솟고 고물가로 인해 경기침체 현상이 발생, 오히려 집값이 하락한다.

1970년대말 오일쇼크로 유가가 치솟으면서 미국의 물가가 15% 가까이 치솟았다. 폴 볼커 당시 연준의장은 1979년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올리는 극단적 조치를 단행했다. 볼커는 1981년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려 물가를 잡았다.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집값이 오르지만, 초인플레이션은 초고금리와 경기침체를 초래, 주택가격이 급락한다. 국토연구원이 2008년 발간한 ‘스태그플레이션과 주택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1974~1975년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률은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25%에 달했다. 1972년 15% 가까이 치솟았던 실질주택가격 변동률은 1973~1975년 사이에 하락세로 전환했고, 1980년에 실질지가지수 변동률은 -13%까지 급락했다. 물가가 오른다고 터키처럼 무조건 집값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부동산 정부 업체 나이트프랭크가 전세계 주요 150개 도시의 주택가격을 조사한 결과 2022년 3월말 기준으로 연간 집값 상승률이 1위를 기록한 터키 이스탄불. 연간 122%가 올랐다/블룸버그

◇미국발 고금리, 집값 하락시킬까

1970년대 독일, 영국 등도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자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렸다. 고물가, 고금리가 경기침체를 초래하고 주택수요를 줄였다. 현재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강행한 것도 1970~80년대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뉴질랜드,캐나다의 집값이 최근 하락세로 전환한 것은 초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 한 몫했다.

국토연구원은 “지속적인 물가상승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 헷지(inflation hedge)로 실물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주택 등 부동산은 일반재화와 달리 고가의 투자자산 성격을 가진 재화로 경기침체에 따른 리스크가 높아지면 주택구매 및 투자수요가 위축된다”고 분석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분양가격 인상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주택수요 위축에 따라 분양가격 상승은 제한적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