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농산물이 금·은 등 귀금속보다 높은 수익률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 전쟁 발(發) 악재가 쏟아지는 가운데 전통적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금·은에 투자하는 ETF는 수익률이 하위권에 머문 반면, 옥수수·대두·밀 등 농산물 ETF는 수익률 상위권에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국제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두 원자재의 가격 향방을 갈랐다는 분석이다.

◇금보다 빛난 농산물

코스콤 ETF체크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서부텍사스원유(WTI)에 투자하는 ‘KODEX WTI원유선물(H)’은 가격이 59.91% 올랐다. 월 기준 국내 원자재 ETF 수익률 1위다. 원유에 투자하는 ‘TIGER원유선물 Enhanced(H)’도 수익률 55.43%로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관련 ETF 가격이 폭등한 결과다. 뒤를 이어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와 ‘KODEX 3대 농산물선물(H)’이 각각 수익률 4.23%, 3.20%로 수익률 ‘톱5′에 나란히 올랐다. 원자재 ETF 시장에서 원유 다음으로 옥수수·대두·밀과 같은 농산물 ETF의 가격 상승세가 가팔랐다는 얘기다.

반면 귀금속 ETF들은 수익률 ‘하위 톱5’란 오명을 얻었다. RISE팔라듐선물(H)은 3월 한 달 동안 20.98% 하락했고, KODEX 은선물(H) 17.68%, TIGER금은선물(H) 10.72%, KODEX 골드선물(H) 10.02%, TIGER 골드선물(H) 9.77% 등이 낙폭이 컸다. 전쟁 국면에서도 글로벌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금과 은 가격이 힘을 쓰지 못하면서 수익률이 부진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결정적 변수는 유가와 인플레이션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우려를 농산물이 금·은보다 높은 수익률을 낸 주된 배경으로 꼽는다. 농산물 생산비는 유가와 직접적으로 연동된다. 대표적으로 요소 비료의 주원료는 천연가스인데, 이란 전쟁 전까지만 해도 t(톤)당 380~400달러에 머물렀던 요소 가격이 최근 80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더구나 트랙터·탈곡기 등 농기계의 연료비 부담이 큰 데다 유가가 오르면 운송비도 덩달아 비싸진다.

이처럼 유가가 농산물의 생산비를 자극하면서 가격 상승 기대감이 시장에 번졌다는 분석이다. 장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액화천연가스(LNG)의 부산물이 비료 원료라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농업 생산성도 떨어진다”며 “이러한 흐름은 시간이 지나면서 식품 등 가격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박승진 하나증권 연구원은 “원유·농산물 ETF는 지정학적 리스크 국면에서 유효한 대응 수단”이라며 “유가 변동성이 커질 때는 레버리지나 인버스 상품을 활용한 대응도 가능하다”고 했다.

반면 인플레이션 우려는 금·은 가격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유가가 물가 전반을 자극하면서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동결하자 시장에서 금리 인상 공포가 재점화됐다. 금과 은은 이자 수익이 붙지 않아 금리 인상 우려가 가격 상승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금, 당분간 반등 어려워”

전문가들 사이에선 당분간 금값이 인플레이션 부담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안전자산이자 인플레이션 위험 회피 자산인 금은 통상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완화 국면에서 강세를 보이는데, 최근 국제 유가 급등으로 긴축 우려가 다시 커졌다”며 “긴축 공포가 완화되기 전까지 단기적으로 금 가격 반등은 제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6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지난 2월 27일 온스당 5247.90달러에서 지난달 31일 4678.60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란 전쟁 이후 약 한 달 만에 10.84% 폭락한 셈이다.

시장은 이란 전쟁 리스크에 주목하고 있다. 박주란 삼성증권 연구원은 “전쟁과 유가 상승세가 장기화되지 않는다면 연준의 통화정책도 긴축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며 “이 경우 금 시장은 ‘긴축 공포’에서 되돌아와 재차 반등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