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발발 한 달이 지난 가운데, 주요국 증시 가운데 한국 증시의 낙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1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26% 하락한 5052.46에 마감하며 장중 한때 5000선 붕괴를 눈앞에 두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이번 충격에 유독 취약했던 배경으로 ▲그간 가팔랐던 상승 폭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 편중 구조 ▲중동산 원유 의존도와 환율 불안 등을 꼽았다.
◇많이 오른 만큼 더 크게 맞았다
이번 조정은 ‘가장 많이 오른 시장이 가장 크게 되돌림을 맞는’ 흐름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스피는 전쟁 충격으로 최근 급락했지만, 그럼에도 연초 이후 상승률은 19.9%로 여전히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쟁 전까지 5000선을 넘어 6000선대까지 단기간에 치솟았던 만큼, 위험 회피 국면에서 차익 실현 매물이 가장 강하게 쏟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전 직후 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증시의 하락 폭을 비교하면 코스피 낙폭이 19.1%로 가장 컸다. 일본 닛케이225(-13.2%)도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코스피의 낙폭이 더 두드러졌다. 그간 상승 탄력이 가장 강했던 만큼 밸류에이션 부담도 가장 먼저 노출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전·하이닉스 쏠림…반도체 흔들리자 지수도 직격탄
국내 증시 특유의 ‘반도체 편중 구조’도 낙폭을 키운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코스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전자우 등 소수 초대형주가 지수 방향을 좌우하는 구조인데, 이번 전쟁 국면에서 이들 종목이 외국인 매도세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우선주가 전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9%에 달하며, 3월 한 달간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도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은 26조원을 넘어선다.
여기에 지난달 24일 구글이 새로운 인공지능 압축 알고리즘 ‘터보퀀트’를 공개하며 글로벌 반도체주 전반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코스피는 상대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블룸버그통신은 “중동 갈등이 고조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수 대형주 중심으로 형성된 코스피 랠리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투자기관 윌슨에셋매니지먼트는 블룸버그에 “한국 증시는 현재 이란 전쟁과 메모리반도체 투자심리 악화로 두 가지 역풍을 맞고 있다”며 “당분간 손을 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원유 의존도·환율 불안까지…아시아 증시 중에서도 더 취약
한국 증시가 특히 일본·대만·인도 등 다른 아시아 증시보다 더 크게 흔들린 배경에는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도 자리한다. 중동 긴장 고조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무역수지와 물가, 기업 비용 부담이 동시에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원유 순수입액 비율은 4.6%로, 인도(3.6%), 일본(1.8%), 중국(1.7%)보다 높다. 중동산 원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구조상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질수록 국내 증시 할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유가 급등과 위험 회피 심리가 겹치며 원·달러 환율까지 불안해지자, 환율과 거시 변수에 민감한 외국인 자금이 한국 증시에서 빠르게 이탈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민혁 국민은행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3월 한달간 국내 주식을 30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는데 이는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로, 그만큼 원화 자산에 대한 회피가 상당함을 방증한다”고 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 또한 “외국인 투자자가 아시아 증시에 대한 자금 흐름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환율과 거시 변수인데, 지금은 둘 다 비우호적인 흐름”이라며 “한국처럼 반도체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시장은 전쟁 국면에서 특별한 매수 유인이 없는 한 매도 압력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