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서학개미’ 한모(31)씨는 최근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를 개설했다. 한씨는 “5월까지 해외 주식을 팔면 양도소득세를 최대 100% 아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계좌를 만들었다”며 “다만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해외 주식을 판 돈을 국내 주식 등에 1년 동안 묵혀둬야 해서 아직은 고민하는 단계”라고 했다.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서학개미들 사이에서 RIA 활용을 고민하는 이가 늘고 있다. RIA는 해외 주식을 이 계좌로 옮겨 판 뒤, 1년 이상 원화 자산에 투자하면 양도세 22%를 면제해 준다는 제도다. ‘서학개미 컴백 계좌’로도 불린다. 법안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지난해 12월 23일 전까지 갖고 있던 해외 주식을 RIA에서 팔면, 매도 총액 5000만원 안에서 양도소득세를 최대 100% 공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매도 시점, 해외 주식 순매수액, 재투자 기간 충족 여부 등에 따라 절세 정도가 달라지는 만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한·한도·재투자 조건 꼼꼼히 따져야
전문가들은 우선 투자자들이 RIA가 ‘조건부’ 절세 계좌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투자자가 지난해 12월 23일까지 보유했던 해외 주식을 올해 5월까지 RIA에서 팔면 양도소득세를 최대 100% 공제받는다. 올해 7월까지는 80%, 12월까지는 50%를 공제받는 등 매도 시점에 따라 공제 비율은 달라진다.
감면 적용 대상은 해외 주식 매도 금액 기준 최대 5000만원. 특히 기존 계좌에서 해외 주식을 팔고 RIA로 현금을 입금할 경우 절세를 적용받지 못한다. 해외 주식을 RIA로 옮긴 뒤, RIA에서 매도해야 한다.
서학개미 한씨가 지난해 6월 해외 주식을 3000만원어치 사들였는데, 주가가 올라 현재 평가 금액이 5000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현행법상 해외 주식의 양도소득세는 연 250만원의 기본 공제를 넘어선 차익에 22% 세금이 붙는 구조다. 원래라면 한씨는 차익 2000만원에서 기본 공제 250만원을 뺀 1750만원에 22% 세율을 적용해 약 385만원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했다. 하지만 이를 올해 5월까지 RIA로 옮겨 판다면 전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6~7월에 팔면 약 308만원(양도소득세의 80%), 8~12월에 팔면 약 193만원(50%)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해외 주식을 팔아 확보한 돈은 국내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1년 이상 재투자해야 한다는 조건도 지켜야 한다. 원화 예탁금으로 계좌에 현금을 들고만 있어도 된다. 개인당 증권사별로 RIA를 한 개씩 만들 수 있지만 전체 RIA를 통틀어 납입 한도는 5000만원을 넘지 못한다.
◇올해 해외주식 샀다면 절세 효과 줄어
지난해 12월 23일 이후에 산 해외 주식이나 ETF 등은 적용 대상이 아닌 데다 올해 순매수 금액에 따라 세제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올 들어 해외 주식·ETF나 상장지수증권(ETN) 등 ‘페널티 상품’을 새로 매수했다면 양도소득세 공제 비율이 달라진다. 개정안에 따라 해외 주식을 새로 샀을 경우 최종 공제액은 ‘기존 공제액×(1−해외 주식 순매수액/RIA 내 해외 주식 매도액)‘이 된다. 쉽게 말해, 올 들어 산 해외 주식의 순매수액이 커질수록 공제액이 작아진다는 얘기다. 더구나 1~5월 순매수액의 100% 반영, 6~7월 80%, 8~12월 50% 등 매수 시점이 이를수록 세제 혜택은 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RIA 절세 효과를 최대로 누리는 방법은 해외 주식을 추가 매수하지 않고, 올해 5월까지 RIA 납입 한도인 5000만원어치 해외 주식을 팔아 국내 자산에 재투자하는 것”이라며 “이미 올해 해외 주식을 샀다면 절세액과 손실액을 비교하는 것도 필수”라고 했다.
예를 들어 올해 엔비디아를 샀는데, 현재 300만원 손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기존 투자 내역 등으로 RIA로 받을 수 있는 공제액이 300만원보다 작다면 순매수액을 줄이기 위해 엔비디아를 팔 유인이 적다는 뜻이다.
◇RIA, 국내 복귀 신호탄 되나
증권가에서는 조건만 충족한다면 RIA 절세 효과가 작지 않아, RIA가 서학개미들의 국내 복귀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국내 주요 증권사 10곳의 RIA 계좌 수는 약 5만7000개로 집계됐다.
임정은 KB증권 연구원은 “RIA는 해외로 유출됐던 개인 투자자 자금을 국내로 돌려 증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며 “(RIA는) 대규모 자금 이동을 이끌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IA로 원화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단 기대도 있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RIA는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탤 것”이라며 “2016년에 비슷한 법안을 실시한 인도네시아의 경우 약 12%의 해외자산이 국내로 복귀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장기적 약세 움직임에도 이 기간에는 강세를 보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