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잇따라 열리는 ‘수퍼 주총위크’가 개막한 가운데, 자사주 소각 의무를 두고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국회서 통과된 3차 상법개정안에 따라 상장사는 새로 취득한 자사주를 1년 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18개월 내 소각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이 자사주 소각 대신 경영상 목적으로 자사주를 처분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 행사를 예고하며 제동을 거는 양상이다.

2일 오후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 /연합뉴스

◇기업들 “자사주 소각 대신 처분하겠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번 주 SK하이닉스·현대차·이마트 등의 정기 주주총회에 올라올 자사주 처분계획에 반대표를 던질 방침이다. 이들 기업이 자사주 소각을 그대로 이행하는 대신, 임직원 보상이나 자회사 편입 등을 위해 자사주를 처분하겠다고 밝히면서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5일 주총에서 자사주 30만주를 임직원 보상용으로 지급하는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26일에 주총을 여는 현대차도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처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같은 날 주총을 여는 이마트는 신세계푸드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 자사주를 활용한 ‘포괄적 주식 교환’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 외에도 한화시스템·LG일렉트릭·크래프톤 등도 저마다의 이유로 자사주 소각이 아닌 처분으로 돌아선 모양새다.

개정 상법에서도 임직원 보상,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의 경영 목적 등에 필요한 경우 주주총회 승인으로 자사주를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18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 모습. 주총장에 입장하기 전 주주 명부를 확인하고 있다./뉴스1

◇국민연금 “주주가치 제고 목적 따라야”

국민연금은 기업들의 자사주 처분 계획에 일제히 제동을 걸고 있다. 국민연금은 SK하이닉스·현대차·이마트 등의 주총이 열리기 앞서 반대 의결권 행사를 예고한 상태다. 이들 기업이 자사주 취득 당시 ‘적정 주가 확보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공시했는데, 임직원 보상·자회사 편입 등은 이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지난 12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상법 개정 취지를 우회하거나 무력화하려는 정관 변경·자사주 처분안은 일반 주주 권익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공언하자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기업들은 보상·우리사주 제도·자회사 편입에 자사주를 활용하는 일이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자사주 처분 계획에 주주 환원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꼬리표가 붙는 등 주주 친화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주를 소각해버리면 향후 주가 안정·보상 수단으로서 활용 폭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