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표 안전 자산인 금이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이 거세지는 와중에도 약세로 돌아섰다. 금 선물 가격은 지난달 20일 이래 줄곧 온스당 5000달러를 웃돌았는데, 약 한 달 만인 지난 18일 5000달러 아래로 밀려났다. 이어 19일에는 하루 만에 6% 가까이 폭락해 4600달러를 간신히 지켰다. 지정학적 갈등이 거세지면 안전 자산인 금값은 통상 오른다.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금값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금리 동결로 고(高)금리 시대가 길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값이 발목 잡혔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내 금은방에 골드바가 진열되어 있다./뉴시스

◇전쟁 통에도 힘 못 쓰는 금값

20일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9일 4월 인도분 금 선물은 온스당 460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앞서 금 선물은 지난달 20일 온스당 5080.9달러를 기록한 이후 줄곧 5000달러 선을 지켜왔다. 이란전쟁이 발발한 이후 첫 거래일인 지난 2일에는 5311.60달러까지 치솟았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전통적인 안전 자산인 금 투자 수요가 급증한 여파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유가 불안이 금 가격의 강세를 뒷받침한 측면도 있다. 유가가 올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위험 회피 수단인 금을 찾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의 최대 가스전을 폭격하는 등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제 유가는 역사적인 고점 부근에 머물러 있다. 국제 유가의 기준치인 브렌트유 5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지난 19일 배럴당 108.65달러에 거래됐다. 하지만 이날 금값은 되레 전날보다 5.9% 폭락하는 등 역풍을 맞았다.

이란 남부에있는 사우스 파르스 석유화학 시설에 공격이 발생했다고 이란의 한 매체가 보도한 영상 / X

◇금리 동결에 발목 잡혀

문제는 유가가 지나치게 가파르게 오르면서 금리 추이까지 영향을 줬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8일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몇 주 사이 단기 인플레이션 기대 지표가 상승했는데, 이는 중동 지역의 공급 차질로 인한 유가 급등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번 회의와 마찬가지로 오늘 회의에서도 다음번 조치가 금리 인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논의됐다”고 했다. 금리 인하는커녕 금리 인상 가능성마저 열어둔 셈이다.

고금리 전망은 금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금은 이자가 붙지 않아 금리가 높은 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최근 달러의 강세도 금 투자에 제동을 걸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금값은 달러로 책정되기 때문에 투자 부담이 커졌다.

18일 금리결정 후 기자회견 중인 제롬 파월 연준 의장/EPA=연합

◇단기 하락 가능성 열어둬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의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TD증권의 댄 갈리 원자재 전략가는 “금은 지난 1년간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한 투자 전략의 일환으로 기관 투자자들이 광범위하게 보유하게 된 자산이지만, 이 같은 기반이 흔들리게 됐다”며 금값의 단기 하방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하이 리지 퓨처스의 데이비드 메거는 “전쟁 격화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금값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안전자산 수요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단지 다른 하방 요인이 이를 압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