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지난해 말 퇴직한 박모(59)씨는 요즘 아침마다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건강도 괜찮고 노후 자금도 어느 정도 마련해 두었지만, 아직 일을 완전히 놓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박씨는 평생 문서 업무를 해왔지만 막상 은퇴 후 내세울 만한 기술은 떠오르지 않는다. AI가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박씨는 과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기동성과 수요부터 보라

국가데이터처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의 69.4%가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생활비 보탬’(54.4%)이 가장 많았지만, ‘일하는 즐거움’(36.1%)도 적지 않았다. 생계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보람을 이어가고 싶은 욕구가 분명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은퇴 후 일자리는 어떤 기준으로 찾아야 할까?

첫째는 기동성이다. 60대 이후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하거나 장기 커리어를 전제로 한 일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체력 변화, 부모 돌봄이나 손주 양육 등 예기치 못한 가족 변수, 무엇보다 은퇴 이후 누려야 할 심리적 여유를 고려해야 한다. 필요할 때 참여하고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구조가 현실적이다.

둘째는 이미 수요가 넘치는 자리를 찾는 것이다. 혁신적인 미래 직업을 찾기보다 당장 사람 손이 부족한 영역을 먼저 보는 편이 낫다. 디지털 전환으로 사무직은 빠르게 줄고 있지만, 사람의 손과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일은 오히려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AI와 초고령 사회라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은 일자리 지형을 바꾸고 있다. AI가 대체하기 쉬운 일은 표준화·원격화·대량 처리가 가능한 업무다. 반대로 현장성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남는다. 기술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생활 밀착형 기술’과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돌봄의 영역’이 대표적이다.

◇‘동네의 기술자’가 되어라

AI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은 여전히 많다. 스마트홈 설치, 전기·보일러·방수 등 간단한 수리, 고령자를 위한 생활 지원처럼 동네 유지·관리 기술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러한 수요 증가는 소득 수준 변화와도 맞물린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인건비 역시 상승하고, 작은 유지·관리라도 직접 해결하기보다 시간을 사는 선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DIY가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았고, 일본 역시 고령층 비율이 높은 지방 도시일수록 생활형 유지·관리 수요가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도 50대 이상을 중심으로 생활 기술 관련 자격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1인 가구와 고령층이 늘면서 생활 속 작은 불편을 해결해주는 서비스의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혼자 살거나 나이가 들수록 사소해 보이는 생활 불편도 쉽게 미루게 되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공사보다는 누군가 한 번 방문해 점검하고 정리해주면 해결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이때 기술 숙련도 못지않게 신뢰와 응대 능력이 중요하다. 약속을 지키고 작업 내용을 쉽게 설명하며, 결과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태도는 작은 일일수록 더 크게 평가된다. 이러한 경험은 단발성 도움에 그치지 않고 다시 찾게 되는 이유가 되며 자연스러운 소개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갑자기 전문 기술직으로 전향하라는 뜻이 아니다. 50대에 기술을 새로 배워 수십 년 경력의 기사와 같은 수준에서 경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무 경험을 쌓아온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조율·관리·연결 능력이다. 고객이 번거로워 외주로 넘기려는 일을 한 번에 정리하고 과정을 관리하며 표준화된 결과를 만들어내는 역할이다.

실제로 은퇴한 중장년이 난방 설비 업체를 설립해 보수 공사는 전문 업체와 연결하고, 보험 처리를 위한 사전·사후 진행 관리와 고객 관리에 차별점을 둔 사례가 있다. 공사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여러 업체를 알아보고 연락해야 하는 시간과 수고를 줄여준 점이 만족으로 이어졌다.

◇돌봄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

사람을 돌보는 일 역시 기계가 대신하기 어렵다. 외국인 인력 확대 등 대응 정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돌봄 수요가 공급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장면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실제 돌봄의 상당 부분을 50~60대가 맡고 있으며, 이 연령대의 돌봄형 일자리 참여도 점차 늘고 있다.

대표적인 돌봄 자격으로는 요양보호사가 있다. 일정 교육과 실습을 거쳐 자격을 취득하면 요양 시설이나 방문 요양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 간병은 수요가 큰 만큼 임금 수준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나 체력 부담이 클 경우 단시간 돌봄 활동도 살펴볼 만하다. 병원 동행 매니저, 장애인 활동 지원사, 일상 상태 확인이나 말벗 서비스, 시간 단위 생활 지원 등 돌봄 수요 역시 점차 세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중장년층 재취업과 경력 전환을 돕기 위한 지원 제도도 확대된다. 퇴직 이후를 막연히 걱정하기보다 가까운 ‘중장년내일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거나 짧은 현장 체험에 참여해 봐도 좋다.